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소설가..
서울국제도서전의 첫날, 마치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 속에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든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출판 시장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올해 도서전의 규모는 작년과 비교해 결코 작지 않았다.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한 부스를 구경하는 순간, 마치 책의 향기가 온 세상을 감싸 안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서전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무료 세미나였다. 사전 예약이 치열했지만, 운 좋게도 몇몇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었다. 김연수, 심보선, 권병준, 정무늬, 정세원, 나태주, 양세형 작가들의 세미나에 성공적으로 예약한 것이다. 비록 송길영, 김진명, 김상욱, 김애란, 최재천, 은희경, 김초엽 작가의 세미나는 예약하지 못했지만, 그것 또한 다음을 기약하는 작은 아쉬움으로 남겼다.
특히, <대성당>으로 알게 된 김연수 작가를 직접 만나는 순간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날 처음 출간된 그의 신간 <걸리버 유람기>를 구매하고 사인까지 받았으니,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세미나 주제는 '후이늠'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였지만, 이번 도서전의 대주제이기도 했다. 미리 알아본 결과, 이는 고전 소설인 『걸리버 여행기』의 4부 소제목이었다.
걸리버의 여행기는 어릴 적부터 익숙한 이야기지만, 3부와 4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다. 이야기가 다소 복잡하고 철학적이어서 그랬던 걸까. 특히, 교육과정에서도 명확한 전개를 가진 1부와 2부(소인국, 거인국)만 다뤄지기 때문에 3, 4부는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다.
김연수 작가의 '후이늠' 세미나는 인간 본성과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다. 그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후이늠의 세계는 완벽한 이성과 합리성으로 이루어진 사회였지만, 김연수는 그곳이 진정한 유토피아일 수 있는지 의문을 던졌다. 후이늠들은 거짓말과 욕망이 없지만, 그들의 세계에도 인간 세계에 대한 오만함과 제한된 이해가 존재한다고 했다.
김연수는 후이늠의 세계를 인간 사회와 비교하며 현실 속 불평등, 비참함, 욕망, 탐욕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현대 사회의 발전과 번영 뒤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을 지적하며, 우리가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의 신간 『걸리버 유람기』는 2024년 한국의 시점에서 다시 쓴 『걸리버 여행기』였다. 김연수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고, 걸리버와 홍길동을 만나게 하며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담았다. 홍길동이 걸리버에게 언어와 감옥, 죽음이 없는 율도국을 소개하는 장면은 인공지능이 언어의 장벽을 없앨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반영한다.
도서전에서의 세미나는 단순한 이상을 넘어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지혜를 나누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성과 계산, 틀리지 않는 합리성과 고결한 영혼을 재료로 이상적인 세상에 이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김연수의 통찰을 통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도서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가슴속에는 여전히 김연수 작가의 이야기가 울려 퍼졌다. 책과 사람, 그리고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고민은 도서전을 통해 더 깊어졌고, 나는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