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예술의 접점을 향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한 나는 미디어 아티스트 권병준 작가의 세미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권병준 작가는 2023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주목받는 예술가로, AI와 예술의 접점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작가는 2019년부터 21년까지 AI 생성형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국악기를 학습시켜 즉흥 연주를 생성해 내는 웨이브넷 프로젝트와 전 세계의 경전을 AI로 학습해 새로운 경전 텍스트를 생성하는 작업이 대표적이었다. 최신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개인적인 창작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그의 노력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AI의 무한한 데이터베이스와 자본력 앞에서 개인 예술가로서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들은 결국 거대한 기업의 자본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고, 개인의 창작물은 다시 기업의 데이터로 돌아갈 뿐이었다.
이후 그는 하드웨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통해 창작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권병준 작가는 로봇을 만들고, 그 로봇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추구했다. 예를 들어, 오체투지를 하는 로봇을 만들고, 그 로봇의 동작을 통해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 로봇은 특정한 동작을 반복하지만, 그 동작 안에서 인간의 감정을 동화시키는 경험을 제공했다.
그가 만든 로봇들은 매우 원시적이고 불안정한 상태였다. 사람들이 도와줘야만 움직일 수 있는 로봇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친해지는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AI와는 달리, 이 로봇들은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가능성을 보았다. 이는 예술의 본질이 경쟁이나 목표 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상호작용에 있음을 깨닫게 했다.
권병준 작가는 기술의 인간화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는 AI 작업을 하다가 중단한 이유를 설명하며, AI는 분해하고 재조립할 수 없는 불가사리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기본적인 기술로 돌아가, 하나하나 분해하고 조립하며 창작하는 방식으로 돌아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었다.
그가 만드는 모든 것은 불완전하고 고장 나기 쉬웠지만, 그것들을 고쳐가며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술은 인간을 지배하거나 감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공생하며 발전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인간이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기술의 인간화라고 했다.
결국, 예술은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이라는 그의 말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과 창의성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기술의 발전이 예술가의 역할을 대체할지라도, 예술은 여전히 인간의 감정과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일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