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AI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열린 심보선 작가의 세미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심보선 작가는 베스트셀러 시인이자 예술 사회학자로, 그의 작품과 연구는 항상 깊은 통찰과 창의성을 담고 있다. 그날의 만남은 기술과 예술, 인간과 AI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심보선 작가는 AI가 시를 쓸 수 있게 된 순간을 주목했다. 그는 인간이 시를 쓸 때 느끼는 기쁨과 달리, AI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시를 쓰게 된 순간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한충자 시인의 '무식한 시인'이라는 시를 예로 들며, 시를 쓰면서 한글을 배운 과정이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가이가 뒷다리를 모르는 개'라는 표현은 AI가 번역하지 못했지만, 이는 한충자 시인이 한글을 동물의 형태로 받아들인 독특한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한충자 - 무식한 시인
시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야
배운 사람이 시를 써 읊는 거지
가이 갸 뒷다리도 모르는 게
백짓장 하나
연필 하나 들고
나서는 게 가소롭다
꽃밭에서도 벌과 나비가
모두 다 꿀을 따지 못하는 것과 같구나
벌들은 꿀을 한보따리 따도
나비는 꿀도 따지 못하고
꽃에 입만 맞추고 허하게 날아갈 뿐
청룡도 바다에서 하늘을 오르지
메마른 모래밭에선 오를 수 없듯
배우지 못한 게 죄구나
아무리 따라가려 해도
아무리 열심히 써도
나중엔
배운 사람만 못한
시, 시를 쓴단다
심보선 작가는 챗GPT와 놀이를 하며 시를 가지고 작업을 했다고 했다. AI에게 절망적으로 쓰라고 지시했을 때, AI가 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며, AI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윤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는 인간이 AI에게 주입한 프로토콜 때문이었다. AI가 생성한 시는 인간성을 지닌 AI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고 했다.
백남준 작가의 기술 인간화에 대한 이야기 역시 심보선 작가의 발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백남준 작가는 기술을 지배나 감시의 도구로 삼는 대신, 평화나 평등의 도구로 삼는 인간화를 제안했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성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좋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인간 중심주의가 초래한 부작용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술의 순수성을 명분으로 비순수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AI는 인간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결과물을 산출하지만,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분야마다 다르다고 했다. 의료 분야에서는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는 것이 명확하지만, 예술 분야에서는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인간과 AI의 협업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며, 인간 중심의 사고와 상상력은 새로운 기술과 함께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보선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성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인간성과 기술의 경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풍부한 예술과 문학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씀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