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공동체가 과연 가능할까?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by 부소유

오늘 강신주 선생님의 강의는 동아시아 불교의 깊이와 그 뿌리를 통해 우리 삶의 철학적 태도를 일깨워 주었다. 강의는 문자를 앞세우지 않는 선불교의 급진성과 자유로움을 강조하며 시작했다. 선생님은 불교가 단순히 경전에 얽매이는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를 삶의 주인으로 만드는 길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불국토라는 이상적 사회를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이 '님'으로 존중받는 그런 공동체가 과연 가능할까? 그는 그 가능성을 신념처럼 내비쳤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오온'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자아를 정의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것조차 여러 요소가 모여 만들어진 효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마치 해중이라는 장인이 수레의 부품을 모두 분해했을 때 그 움직임이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은 인연의 화합으로 이루어지고, 그 화합이 깨지면 모든 것은 흩어진다. 우리는 이 세상의 조화로운 일부분일 뿐, 그 자체로서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집착하고,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그의 말이 머리에 깊이 박혔다.


불교에서 말하는 오온은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세상을 경험하는지를 설명하는 다섯 가지 측면이다. 먼저 색은 우리 몸과 주변 환경 같은 물질적인 것들을 말한다. 즉,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수는 감각이나 느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차가운 물을 만지면 차갑다고 느끼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이러한 느낌들이 수에 해당한다. 상은 기억이나 생각하는 능력을 말한다. 어떤 사물을 보고 "이것은 사과이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상이다. 행은 우리의 의지나 행동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나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식은 의식이나 인식을 의미한다. 우리가 깨어있을 때 주변을 인지하고,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오온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을 설명하는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이다. 불교에서는 이 오온들이 모여서 '나'라는 존재를 만들지만, 사실 이들은 고정된 '나'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나'라는 것이 변하지 않는 실체는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라이프니츠의 '미세 지각' 이론을 불교의 인연화합과 연관 지어 설명한 부분은 참으로 신선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의 모습이 하나하나 작은 지각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은,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다르게 보게 만드는 통찰이었다. 우리가 익숙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매 순간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결국에는 '나'라는 존재의 유동성과도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이프니츠의 미세 지각 이론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은 감각이나 경험이 사실은 우리의 삶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우리의 마음에 기록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교실 밖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데, 그 소리를 우리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작은 소리도 우리 마음속에는 남아 있고, 쌓여서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이런 작은 경험들이 모여서 우리의 큰 감정이나 생각, 행동을 형성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에는 잘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것들도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경험들도 무시하지 않고, 그것들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게 해준다.


강신주 선생님은 강의 끝부분에서 현악 사중주를 예로 들어, 각각의 악기가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을 이루는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그것이 바로 선불교에서 말하는 '불국토'의 비전일 것이다.


오늘 강의를 들으며, 나는 스스로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얼마나 주체적으로, 얼마나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나와 관계된 사람들을 얼마나 '님'으로 존중하고 있는가? 강의는 끝났지만, 그 여운은 깊이 남아 나를 반성하게 했다. 불교가 꿈꾸는 세계는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실천에 달려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