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수는 허탈한 기분으로 낡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머리는 감지 않아서 떡이 지었고, 세수 못한 얼굴은 초췌했으며, 눈에 눈곱도 있었다. 그 상태로 잠옷을 입고 그대로 거실의 소파에 나와서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읽고 있다. 철수는 취미로 소설을 썼다는 이유를 내부 누군가가 회사의 인사팀에 신고해서, 회사에서 몇 달간 업무 배재를 당했다. 창문이 없는 반지하 현장으로 좌천되었으며, 임금이 삭감되고, 내년 연봉 또한 내려갈 예정이다. 반지하 현장에서는 여러 명의 감시를 받으며 점심시간에 하던 독서조차 눈치를 보며 하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고철수는 자기 계발 휴직기간 동안 그저 글을 한번 써보고 싶었다. 그냥 글보다는 독자에게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는 현실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 지난 10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던 그의 과거 경험은 좋은 글감이었다. 그 기억을 살려서 단어를 골라냈고, 문장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한 편의 서사를 만들기에는 글쓰기 역량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철수는 이공계를 전공하며 그대로 공장에 취업하여 기술문서만 써봤지 그럴듯한 글은 일기 이외에는 쓴 적이 없었다. 읽은 책이 수 백 권을 넘어가지만, 글쓰기 실력은 별개의 문제였다. 철수는 작법서를 열 권을 읽고,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우연히 글쓰기 연습을 하기 좋은 소설 플랫폼도 알아냈다. 정확하게는 소설이 아니고 웹소설 플랫폼이다. 수많은 작품들이 이 플랫폼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져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어느 날 철수는 넷플릭스를 보다가 이제 글을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갑자기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내용은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했던 그의 과거 경험을 살려서 회사생활의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했던 그만의 방법들을 쓰고자 했다. 100일간 100화를 넘게 매일 연재했다. 신들린 듯 글을 연재했다. 어떤 날은 그저 그런 글을 써서 억지로 올려 악성 댓글을 받았다. 어떤 날은 조금 괜찮은 글이 나와서 응원 댓글을 받았다. 또 어떤 날은 미스터리를 썼고, 어떤 날은 SF, 로맨스, 액션,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며 글을 썼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구독자는 100명을 겨우 넘겼다. 그중 지인이 30명이다. 회당 조회수는 50을 겨우 넘겼다. 한마디로 망했다. 철수는 웹소설을 휴재하고, 독서에 더 집중하며 개인 블로그에 일기와 수필을 쓰며 글쓰기 근육을 단련했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동료에게 개인 취미를 얘기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동료가 철수의 웹소설 사이트를 소문냈고, 어떤 직원은 악의적으로, 또 어떤 직원은 별생각 없이 소문을 냈다. 1년이 지나서 그 소문은 고철수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사람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김미영 반장, 그녀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철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러던 참에 철수가 써둔 글이 1년이 지나 그녀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특정 여성 직원의 외모를 묘사한 문장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하고, 특정 직원과 회사가 추정된다며 성희롱과 명예훼손으로 고철수를 인사팀에 신고했다. 이 일로 인한 오해가 불씨가 되어 만나던 그녀와도 이별했다.
철수의 글은 모두 허구의 상상으로 만든 글이며, 중학생이 읽어도 될 수준의 외모 묘사를 했으며, 사실적시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미영 반장은 부하직원까지 동원하며 고철수 개인을 집단 린치를 하며 문제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문제가 아닌 것조차도 문제로 만드는 데에는 능력이 탁월했다. 저러다 말겠지 싶었지만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다. 심지어 고철수가 개인적으로 수필과 일기를 끄적였던 개인 블로그마저도 김반장 일당의 치밀한 뒷조사로 발각되었다. 그야말로 개인사찰이 따로 없었다.
결국 인사팀 조사관은 철수를 불러서 협박을 했다. 조사관은 본 사건에 순순하게 시인하지 않으면 회사에 다니기 힘들 것이라고 압박 면담을 했다. 철수는 몇 차례의 지긋지긋한 조사를 받고 정신과 감정이 너덜너덜 해져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렇게 업무에서 배재된 상태로 몇 달이 지나갔다.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감봉이라는 징계장을 받았다.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지금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철수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처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철수는 독서와 글쓰기를 멈추지는 않는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려고 마음먹었다. 물론 당시에는 정의감으로 불복하려고 했지만 개인으로 거대한 집단에 저항하기는 힘들었다. 어쩌겠나. 그냥 인정했다. 그저 운이 없었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사회는 부조리하고, 세상 자체가 부조리한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