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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생활자 2

by 부소유

애월에 지낼 때 자주 가던 동네 책방이 있다.

애월책방이다.

책방의 이름이 [애월책방이다]이다.

인테리어를 했던 사장님의 감각적인 장식품과 책의 배치가 돋보이는 곳이다.

사장은 날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침부터 제일 먼저 들른 곳인데 휴무다.


멜록카페라는 친한 사장의 동네 카페가 있다.

원래 연중무휴인데 사장이 코로나에 걸려서 오늘부터 휴무에 들어갔다.

카페 사장이 알고 보니 대학교 후배라는 것을 알아서 친해진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카페로 갔다.

‘인디고’라는 해안도로의 분위기 있는 카페다.

다섯 번은 갔던 것 같은데 역시나 사장은 나를 모른다.

관광지라 그렇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다.


늦은 오후가 되어 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정리했다.

‘신스버거’라는 수제버거가 생각났다.

제주도 흑돼지고기를 사용한 멘치버거가 기가 막히다.


그 옆에는 규모 있는 근린공원과 애월도서관이 붙어있다.

자주 다니던 도서관이다.

2층 자료실 구석의 해변을 바라보며 책을 읽는 자리의 경관이 끝내준다.

책을 한 30분 읽었다.

청주에서 읽던 <개발자가 되고 싶니>라는 책의 읽던 부분을 찾아 마저 읽었다.

25년 차 시니어 개발자가 작성한 책인데 방법론적인 내용보다는 오래가는 개발자의 마음가짐에 대한 책이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개발자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인공의 것에만 중독되어 살지 말고 자연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

저자는 책의 마무리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세 번째 카페로 이동했다.

‘육칠월’이라는 조용한 동네 카페다.

관광 지역도 아니고 눈에 띄는 곳에 있는 카페가 아니라 늘 손님이 없다.

사장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것이 좋다.

사장이 책을 좋아하는지 좋은 책이 많다.

헤세의 책도 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독립출판물도 있다.

여기는 제주에 살던 시절 열 번 이상은 방문했던 카페인데 사장이 나를 몰라보는지 알아보는지 모르겠다.

사적인 얘기를 전혀 안 하는 이런 관계도 좋다.

다시 자리를 잡고 글을 썼다.


어느덧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일몰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어둠이 밀려온다.

애월 거주 경력으로 해 떨어지는 것을 보기 좋은 위치를 알기에 정리하고 이동했다.


애월다락쉼터에 도착했다.

올레길 16코스의 초반부에 위치해 있다.

이상하다. 해가 떨어지는 위치가 바뀌었다.

원래 수평선에 떨어지는데 건물로 떨어지고 있어서 아쉽다.

아무래도 계절의 변화 때문인 것 같다.

해가 갑자기 빠르게 떨어진다.


사실 지구과학적으로 해가 건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공전과 자전 때문에 지구와 태양의 위치가 바뀐 것인데 해가 떨어진다는 고전적인 표현이 나쁘지는 않다.


큰 계획 없이 생각나는 대로 카페를 전전했던 하루가 괜찮았다.

사실 두 번째 카페, 세 번째 카페가 닫았더라도 또 다녀본 네 번째 카페, 다섯 번째 카페가 있다.

인생선택의 보폭을 넓히듯 카페선택의 보폭도 미리 넓혀두었다.


귀가 후 글을 조금 더 쓰다가 잠들었다.

다음날은 호텔에서 통유리창 밖의 바다를 보며 혹은 네 번째 카페, 다섯 번째 카페에서 조금 더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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