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보라, 바람 속에서 침묵에 묻혔던 그들의 목소리가 깨어난다
4월 3일 날, 제주도 4.3 사건을 기억하는 독립영화 ‘목소리들’을 관람했다. 본 영화는 2024년 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2025년 4월 3일 전국 몇 군데의 크고 작은 극장에서 날을 맞춰서 개봉했다. 책에서나 몇 줄 읽어 봤던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제주도에 잠시 살던 시절에 더 마음 아프게 와닿게 되었다. 1948년부터 몇 년간 제주도는 암흑의 시대였다. 해방 후 기쁨을 누렸던 것도 잠시.. 정부의 군대와 경찰이 제주도 주민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했다.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비극이다. 그 비극은 50여 년이 지나서야 진상 규명을 위해 오랜 시간 많은 분들이 수고해 주시고 계시지만 그 안에는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들이 있었다. 본 영화는 그 여성의 목소리들에 대한 영화였다.
제주도는 ‘삼다도’라고도 불리며 여자, 돌, 바람이 많은 섬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해방 후 인위적으로 많아진 것이 있었다. 바로 여성들이다. 제주 4.3 사건 당시 남성들이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따라서 남은 여성들이 남은 가족을 돌보거나 생업을 하면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게다가 젊은 여성들은 군대와 경찰에게 성희롱, 성폭행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후 어쩌면 남아있는 자들에게 아주 오랜 시간 더욱 비극적인 나날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여성들 마저 이제 하나둘 떠나고 남은 여성들은 할머니가 되어 과거에 대해 말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내 괴로움에 떨며 침묵한다. 무려 70여 년 전 수많은 사람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강간 살해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이 자꾸 떠오르는 모습이다. 여러 군데를 칼로 찔리고도 죽은 척했다가 살아남게 된 할머니, 트라우마로 평생 약을 먹고 떨고 있는 할머니,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키려는 할머니, 아직도 떨린다며 말을 아끼는 할머니,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 등 할머니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여성이며 역사 속 비극의 산증인이다. 심지어 그 역사 속에는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누구의 처, 누구의 모, 누구의 1녀, 2녀.. 등이 있었다.
누구에겐 지나간 사건이지만 누구에겐 현재도 계속 이어지는 고통과 슬픔이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갖고 사는 이들에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기는 어렵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제주도 함덕, 표선 등에서 웃고 떠들며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갖기 전에는 그 자리에서 무참한 폭력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제주도가 그저 어떤 컨텐츠로 소비될 수도 있겠지만, 누구는 또 그 사건을 쉽게 언급할 수 없겠지만.. 그 목소리들을 계속 기억하며 안타까워하고 그들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위로하며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참된 인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