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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by 부소유
오정희 작가의 중편소설


1. 느낀 점


분주하게 집안일을 하는 할머니와 무력하게 쉬고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신경을 거스르게 만드는 이웃집 아이로 구성된 중편소설이다. 할머니는 아내, 할아버지는 그, 이웃집 아이는 아이로 호칭이 정리되어 있다.


아내는 어떤 집안 모임을 위한 칼국수 재료의 밑 작업을 했지만 공교롭게 모임이 취소되어서 그를 위한 칼국수 한 그릇을 만들고 나머지 밀가루 반죽으로 이것저것을 심심풀이로 만든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남편인 그는 그저 집 주변을 걷거나 집안에서 쉬면서 무력함에 빠져 있다. 그는 일터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몸이 무거워졌고, 틀니까지 하게 되면서 노화된 신체에 천천히 적응하고 있다. 아이는 이웃집에 사는 아이로 부모가 일터에 있어서 인지 혼자 다른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하면서 놀고 있다. 그의 아내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재미를 느끼고 신경 쓰이게 한다.


그는 아내가 차려준 밥상에도 전 같지 않게 다소 민감하게 반응한다. 수도 점검으로 잠깐 집을 방문한 청년에게 반가움을 표시하며 뭔가를 베풀려고 하는 아내를 보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된다. 아내는 나중에 아이와 사소한 일로 충돌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의 죽은 아들이나, 그의 늙은 모습을 혼자 생각하며 지나가는 세월에 아쉬움을 갖고 있을 뿐이다.


늙는다는 것, 늙음에 대한 것은 그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연결시켜보려고 해도 결국 무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유치원생 아이에게 몇 번을 당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아내처럼, 그의 아내를 제대로 달래주지도 못하는 그처럼,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서 변두리로 밀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반복된다. 특히 뭐든 해내는 청년에게서 느껴지는 생기와 이미 죽어서 형체조차 없는 그의 아들을 비교해 보고, 살아서 틀니를 사용하는 그의 상황과 죽어서 그의 몸에서 분리돼버린 그의 치아들을 비교해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의 사이 어딘가가 늙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인간이 돈, 명예, 권력, 그리고 때때로 어떤 철학이나 후손이 없이 늙어간다는 것은 아무 인정도 받지 못하고 결국 쉽게 무시당하며 세상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 똑같은 것 같다. 이 소설은 무섭게도 아무것도 없이 늙은 노인의 삶의 이면을 탁월하게 나타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뭔지 모를 안쓰러움과 처연함이 종종 느껴지는 것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서운 것은 나조차도 언젠가는 그런 시선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이미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2. 좋았던 부분


틀니에 익숙해지려면 되도록 틀니를 빼지 말고 자신이 틀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치 말라고 의사는 말했지만 그는 언제나 빼어 깨끗한 물에 담가 손닿는 위치에 두고서야 잠이 들곤 했다. 잠으로 들어가는 잠깐의 무중력 상태에서 틀니만이 무겁게 매달려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뿐더러 틀니만이 홀로 깨어 제멋대로 지껄일, 이윽고 육신은 사라지고 차갑고 단단한 무생물만이 잔혹하게 번득이며 존재할 공간이 두려운 것이다.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조차 그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틀니가 제멋대로 덜그럭대며 지껄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자주 말을 끊곤 했다.


-. 그가 사로잡혀있는 세계와 그가 저항하려고 하는 세계를 틀니로 묘사한 단락이다. 그는 계속해서 늙어가는 것에 저항하고 싶어 하지만 그저 아무것도 못할 뿐이라는 것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


3. 두 번째로 좋았던 부분


참 이상하죠. 난 요즘 자주 죽은 사람들 생각을 한다우. 꼭 아직도 살아있는 것처럼 그 사람들 생전의 일이 환히 떠오르는 거예요. 그러면서 정작 우리가 살아온 세월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나지 않는 희미한 꿈 같아요. 당신이 쉰 살 때, 마흔 살 때를 기억하세요? 난 통 그때의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요. 난 아무래도 너무 오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뜰 손질도 이제 힘이 들어요. 하지만 하루만 내버려둬도 잡초가 아귀처럼 자라니…… 요즘 같은 계절엔 더 그래요. 내버려두라고. 예전에 그 애는 그랬었죠, 굳이 꽃과 풀을 가려서 뭘 하느냐고. 어울려 자라는 것이 더 보기 좋다구요.


-. 아내가 그녀의 경험과 기억에 대해 한탄하는 단락이다. 삶의 한 부분에 갇혀있는 기억, 멈춰 있거나, 편집되거나, 사라져 가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연결하지 못해서 답답해하는 것이 잘 드러나있다. 현실에서는 잡초를 계속 손질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조차도 서서히 안 하게 될 것이 예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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