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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by 부소유
정여울 작가의 산문집.
부제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서평을 기록한 책의 서평이다. 그동안 읽은 서평 모음집 중에 제일 전문적이며, 밀도가 높고, 섬세한 서평의 모음집이다.


힘들게 읽었다. 단순한 서평이 아니고 문학을 통해 나를 돌봐야 하는 이야기다. 그것은 나의 상처, 운이 좋게도 아직까지 없다면 앞으로 생기게 될지도 모를 상처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다. 작가는 고통에 시달리던 시절 문학을 읽고 또 문학 관련 글을 쓰면서 고통을 극복했다고 한다. 그 고통은 누군가에게는 작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의 크기에 상관없이 문학작품을 읽으며 그 작품 속의 인물이 되어 함께 힘들어하거나 극복을 하는 과정을 수없이 겪고 나면 괜찮았다는 말이다.


사실 말이 쉽지 엄청나게 힘든 과정이다. 책에 언급된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의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 고통, 권여선의 <손톱>에서 소희가 겪는 신체적, 심리적 복합적인 고통. 그 힘든 경험들. 그것들은 완전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저 공감하고 함께 힘들어하고 안타까워하며 슬퍼할 수밖에 없다. <신데렐라>속 신데렐라나 <빨강 머리 앤>의 앤을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직접 도와준다고 쳐도 그들이 정말 성장할까. 도와주는 그 순간 잠깐만 편할 것이고 또다시 힘든 일은 계속될 것이다. 결국 내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문학을 왜 읽어야 할까.


정여울 작가는 계속 내 안의 내면 아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데미안>에서 데미안의 계시?를 받아서 알을 깨는 싱클레어처럼 문학작품 속에 누군가를 만나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함께 슬퍼하기도 하거나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서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정여울 작가는 슬픔, 분노, 열정, 희망을 분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본인도 그렇게 했고, 아직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는 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여리고, 예민하고, 감성적인 사람 같다. 그래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받는 상처가 보통 사람에 비해 곱절이 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또 어려운 시간을 감내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 작가의 왕성한 활동과 글을 보면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녀를 더욱 응원하고 싶다. 더불어 이것은 나를 위한 응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우선 이 책의 구조는 1부 다시 인생을 시작하려는 마음, 2부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3부 내가 꿈꾸던 어른은 어디로 갔을까, 4부 내 안의 외계어를 지키는 일, 5부 잃어버린 모모의 시간을 찾아서. 이렇게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별 제목만 봐도 절대로 쉽지는 않다. 더군다나 문학에 상당히 경험이 있는 S대 출신 문학박사의 산문이니 배경지식이 있어야 더 잘 보이는 지점이 수두룩하다. 솔직히 모르고 있는 배경지식이 많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학작품 중에 몇 개만 알고 있어서도 안된다. 대부분의 작품을 이미 읽어서 알고 있어야 어느 정도 공감도 되고 작가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내 짧은 배경지식이 탓이니 남 탓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더 읽고 공부해야 할 수밖에.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난 앞으로 수많은 문학작품을 읽어 나가면서 내면 아이와 소통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내면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험한 세상을 그나마 좀 더 유연한 마음으로 살기 좋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발견한 저자의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저자는 문학에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있어서 그런지 문학작품을 굉장히 꼼꼼하게 읽고 느끼며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서 작품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들에게 감정 이입을 해서 그 조연들에게도 공감하며 읽어낸다는 것이다. 소외된 사람. 조연 또한 문학 작가의 탁월한 장치로 설정되어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스쳐 지나가는 그 조연들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렇게 문학에서 나를 찾는다. 그리고 저자가 말한 내 안의 내면 아이를 깨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문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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