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성 아룬다티 로이의 인도 소설이다. 장편 소설로 460페이지에 육박하는 조금 두께감이 있는 장편소설이다.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 특별판으로 출간된 양장본으로 읽었다. 특별판이라서 표지가 디자인이 감각적이다. 인도가 느껴지는 색감과 인물이 눈에 띈다.
다 읽은 소감으로는 어려웠다. 단어, 문장, 단락 구성이 대부분 추상적이며 상징적이다. 게다가 시간의 순서 또한 선형적이지 않고 과거, 현재가 역행했다가, 순행하고 있어서 소설에 완전히 몰입하기 힘들었다. 완전하게 같지는 않지만 타사의 세계문학소설 중 하나인 빌러비드와 비슷한 느낌도 받았다.
또 하나의 어려운 이유는 배경이 인도라는 것이다. 특히 그들의 언어인 말라얄람어,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언어유희가 반복되고 있고, 또 그들의 부족한 영어까지 이용한 말장난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물론 주인공인 아이들의 시점에서 그렇게 서술한 것은 하나의 장치로 놀랍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어려운 것은 아쉽다. 게다가 인도의 문화를 약간은 알고 있어야 소설 속 인물들의 상황이 이해 가능하다. 그들의 오래된 제도인 카스트제도(계급제도)와 그 제도권 안에 속하지 못한 불가촉천민, 그들과 가촉민들과의 관계를 조금은 알고 있어야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제일 중요한 사건을 초반에 던지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건의 배경과 엮여있는 인물들이 소개되고 그들 간의 관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리고 그 사건의 중요한 지점은 후반부인 400페이지가 넘어서야 나온다. 독자는 인내심과 호기심을 갖고 읽어내야 그것을 발견한다. 소피 몰이 시작부터 왜 죽었지? 라는 의문으로 시작해서 그 궁금증을 갖고 계속 파고 들어가게 만든다.
이 소설의 좋았던 점은 섬세한 묘사다. 여러 문장이 인도에 있는 도시와 마을을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각적인 것뿐 아니라 냄새와 소리까지 묘사하고 있어서 현실적인 인도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이란성 쌍둥이 주인공인 라헬, 에스타의 심리 또한 탁월하게 묘사했다. 그 관점에서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인도 사회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밖의 인물들인 암무, 바바, 차코, 마거릿 코참마, 맘마치, 파파치, 벨루타, 필라이 그리고 코추 마리아와 베이비 코참마까지.. 얼핏 보면 인물들이 과하게 많은 듯 보이지만 이들의 관계도를 그려놓고 읽어보면 우리 주말 드라마처럼 계속 한 집안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형태라서 크게 어렵지는 않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이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이 이 소설이 전달하고 싶어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작은 것들의 신>. 작은 것은 아마도 불가촉민과 가촉민의 만남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암무와 벨루타의 만남으로, 차코와 마거릿 코참마의 만남으로, 베이비 코참마(나보미 이페)와 존 이페의 만남 등 다양한 만남과 접촉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금지된 만남은 결국 소피 몰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저항하고 싶지만 그 저항은 결국 큰 것들에 가로막힌다. 제도, 사회, 관념, 정치가 그 작은 것들의 움직임을 계속 막는다. 그들은 그저 아주 작은 거미, 혹은 더 작은 벌레처럼 움직이고 싶을 뿐이다. 그 작은 것들을 꿈꾸며 성장하는 쌍둥이 라헬과 에스타는 그래서 더 세상을 이해하기 힘들어했던 것이 아닐까. 특히 그래서 에스타에게는 그를 성추행 했던 오렌지 드링크 레몬 드링크맨과 겪은 사건이 오랜 시간 충격적인 경험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벨루타의 최후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수많은 질문을 남겨주는 장편소설이다.
좋았던 부분 :
아예메넴의 5월은 덥고 음울한 달이다. 낮은 길고 후텁지근하다. 강물은 낮아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고요히 서 있는 초록 나무에서 검은 까마귀들이 샛노란 망고를 먹어댄다. 붉은 바나나가 익어간다. 잭프루트가 여물어 입을 벌린다. 과일향이 진동하는 공기 중을 방종한 청파리들이 공허하게 윙윙댄다. 그러다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져서는 햇볕 속에서 당황한 채 죽어간다.
-. 몇 번을 읽어도 감탄스러운 단락이다. 시각, 청각, 후각이 동시에 느껴지게 만드는 이 소설의 첫 단락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 단락으로 시작해서 출판사가 인도까지 비행기로 날아와 거액의 계약금을 내게 만들었다고 하니 가히 천재적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사건들, 평범한 것들은 부서지고 재구성된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갑자기 그것들은 한 이야기의 빛바랜 뼈대가 된다. 그렇대도 소피 몰이 아예메넴에 왔을 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 한편으로는, 몇천 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오기 훨씬 전에. 영국이 말라바르를 점령하기 전에, 네덜란드가 지배하기 전에, 바스쿠 다 가마가 오기 전에, 자모린 가문이 캘리컷을 정복하기 전에.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보라색 가운을 입은 시리아인 주교 세 명이 살해되어, 가슴 위에 바다뱀들이 똬리를 틀고 엉클어진 턱수염에는 굴을 붙이고 바다에서 떠오르기 전에. 마치 기독교가 배를 타고 들어와 우러난 차처럼 케랄라에 스며들기 훨씬 전에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사랑의 법칙’이 만들어진 그날들에서 시작되었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사랑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 받아야 하는 지를 정한 법. 그리고 얼마나 사랑받아야 하는지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세상에서,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 작은 사건들에게 영향을 주는 큰 사건들을 직접적인 사건을 나열해서 보여주고 있다. 상당히 실질적이고, 구체적이고, 상징적이다.
그는 늪지를 통해 ‘역사의 집’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로 발을 내디뎠다. 그는 강물에 물결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강가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문두를 말리기 위해 머리 위에 펼쳐들었다. 바람이 불어와 돛처럼 문두를 들어올렸다. 그는 갑자기 행복해졌다. ‘상황이 더 나빠질거야,’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고는 더 좋아질 거고.’ 그는 이제 빠르게 걸었다, ‘어둠의 심연’을 향해. 한 마리 늑대처럼 외롭게. ‘상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벌거벗었지만 손톱을 칠한.
-. 강가, 길, 물결, 발자국을 통해 큰 것과 작은 것의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아마도 그의 최후를 짐작하게 만드는 복선들이 나열되고 있다.
그는 누구 였나? 그는 누구일 수 있었나? ‘상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소름과 문득 떠오르는 미소의 신’. 그는 한 번에 한 가지만 할 수 있었다. 그녀를 만지면 말을 걸 수 없었고, 그녀를 사랑하면 떠날 수 없었고, 말을 하면 귀기울일 수 없었고, 싸우면 이길 수 없었다.
-. 그에게 다양한 신의 의미를 부여하여 그를 크게 만들어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는 작은 것들의 신일 뿐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