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오래간만에 감상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다. 누군가 추천해서 찜 해두었던 드라마인데 누가 추천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답답하다. 드라마는 4편으로 구성된 짧은 시리즈다. 한 편에 한 시간 분량이니 4시간 만에 전체를 감상할 수 있었다. 요즘 같은 숏폼의 시대에 4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긴 하지만 하나의 드라마를 4시간에 다 본다고 생각하며 푹 빠져서 몰입하여 감상했다.
다 본 결과는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대단하고 새롭다. 드라마는 감상하는 내내 촬영기법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롱테이크, 원테이크로 촬영을 해서 그런 것 같다. 하나의 씬을 이렇게 길게 아마도 한 시간 내내 잡고 촬영했다는 것이 뭔가 존경스러울 정도다. 짜인 각본에 맞춰서 주연뿐만 아니라 수많은 조연들이 스쳐 지나가며 상호 소통도 하고 타이밍에 맞춘 다양한 움직임이 포착되는데 이것이 모두 사전에 계획되어 모두 한방에 촬영이 된 것이라고 하니 더 예술이다. 합성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영상 또한 훌륭했다. 톤이 다운된 색감, 중복되어 나오는 파란색, 그중에 짙은 파란색, 연한 파란색, 그보다 더더 연한 파란색, 그보다 더더더 진한 파란색 등 다채로운 파란색. 그 색감 안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마치 시청자가 실제 있는 사건을 훔쳐보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많은 미디어는 색을 더 과장되게 만들어서 시청자를 주목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색을 흐리게 만들어 서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서사에 집중할 수 있다.
서사 또한 예사롭지가 않았다. 드라마는 매 편이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1화는 주인공인 소년 제이미를 중심으로, 2화는 형사 배스컴, 3화는 심리상담사 애리스턴, 4화는 주인공의 아버지 에디 밀러를 중심으로 서사가 펼쳐진다. 그들의 탁월한 연기력에 빠지면서 처음에는 궁금했다. 본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주인공이 범인이 맞는지. 진범이 누구인지. 그 추리 과정이 아주 궁금했다. 그러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범인을 찾는 것이 이 드라마의 포인트가 아니었다. 드라마는 내내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들을 아주 섬세하고 촘촘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왜 그랬을까.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그랬을까. 누가 죄인인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 별 중심인물들이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드라마는 시청자를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다양한 움직임과 벌어지는 일들에 집중하게 만든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않는 가해자의 가족들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서사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절대로 만만하지 않다. 청소년 사회문제, 청소년을 넘어서 청년 그리고 인간의 사회문제. SNS로 누군가를 저격하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사회. 왕따를 넘어서 ‘인셀’이라고 부르는, 동양권에서는 다소 어색한 신조어 문제로 사람을 괴롭히는 문제가 주로 나온다. 여성 혐오, 남성 혐오, 모태솔로, 순결주의, 독신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서 ‘인셀’이라고 부르는 무시무시하며 안타까운 집단이 생겼다. 그 집단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인지 혹은 사람들이 그런 집단화를 양성하거나 방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미권의 큰 사회문제로 커졌고 그것이 변질되어 동양권으로 넘어오는 상황이다. 그것은 SNS라는 괴물을 타고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애초에 사람이 서로를 혐오하고 따돌리는 행위가 맞나 싶다.
드라마의 어른들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무책임하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어른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과연 요즘 강조되고 있는 진정한 어른이 실제로 얼마나 되나 싶다. 드라마 속 인물들 중에 눈에 띄는 것으로 청소년들의 발육 상태가 유난히 좋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어른들은 어딘지 모르게 좀 왜소하거나 허약해 보이고 심지어 약해 보이거나 모자라 보인다. 게다가 약간 무책임하다. 소년의 가족을 빼고는 경찰, 변호사, 상담사, 교사, 친구들 모두 직업으로 또는 구성원으로 역할에만 충실할 뿐 절대로 선을 넘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 모습은 무책임하다기보다는 방관자의 모습에 가깝기도 하다. 그런 모습들조차 우리의 모습을 과장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소년 제이미는 오랜 시간 그런 방관자들 속에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밖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결국 에디는 본인이 가정폭력 속에서 살아와서 그렇게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차라리 방관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무책임한 핑계인지도 모르겠다.
소년은 오랜 시간 방관, 혐오, 괴롭힘, 따돌림 속에서 살아왔고 그것이 결국 이런 사건을 만든 것이 아닐까. 소년의 시간은 우리에게 그의 단 몇 시간, 며칠, 몇 주일, 몇 달을 순간의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오랜 시간 동안 아마도 고통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서 결국 지금의 소년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