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설화 작가가 쓰고 그린 그림책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이야기.
이 작품 역시 <슈퍼 거북> 처럼 그 이야기의 뒷 이야기다.
이번엔 토끼 재빨라의 이야기.
거북이에게 져서 웃음거리가 된 토끼 재빨라는 이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 어떤 변명을 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재빨라는 달리기에 대한 강박증이 생겨서 달리기 비슷한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결국 앞으로 절대로 달리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머릿속에 계속 달리기가 생각나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병든 토끼 같았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달리기 대회에 휩쓸리고 어쩔 수 없이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재빨라는 그렇게 얼떨결에 달리며 생기를 되찾는다.
“역시 토끼는 달려야 한다니까!”
이번에는 토끼의 이야기다. 그림은 여전히 동화풍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표지는 절대로 뛰지 않겠다는 의지의 토끼 모습이 보인다. 면지에는 역시 이 작품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담겨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이 그림책 또한 이전 작품 <슈퍼 거북>에 이어서 토끼와 거북이를 탁월하게 재해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패자에 좀 더 집중한 이야기다.
승패병가상사라고 싸움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이기고 지는 일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성공이 있으면 실패가 있기 마련이고 1등이 있으면 2등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에 세상에서 혼자 어떤 것을 해서 실패를 했다면 그저 실수로 생각하고 아무도 그것을 탓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이상 이 사회에서는 누군가는 성공을 하고 누군가는 실패를 하게 된다. 그 실패를 갖고 어쩌다가 하는 실수로 여겨 너그럽게 봐주면 좋을 텐데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실패는 성공과 다르게 상당히 많은 격언, 명언 혹은 속담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실패는 기회’, ‘실패는 되지 않는 방법 1만 가지를 발견한 것’, ‘패배로 강해진다’, ‘실패로 배운 교훈은 값지다’, ‘실패는 현명해지는 훈련’ 등 엄청나게 많은 문장이 전 세계적으로 잠언처럼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실패하면 어떤가? 겉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그저 패배자가 될 뿐이다. 혹은 개인적으로 정신승리를 할지라도 세상은 실패한 사람을 패배자로 기억할 수 있다.
이 그림책의 토끼 재빨라 또한 그렇다. 패배자로 낙인이 찍혔고 현실을 회피한다. 다행스럽게도 재빨라는 어쩌다 보니 다시 달리게 되면서 생기를 찾았지만 사실 그것은 쉽지 않다. 누구나 실패를 극복하는 일은 어렵다. 그렇다고 재빨라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까? 아니다. 그 실패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 해 볼 만한 것들을 찾아서 해야 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하다못해 이렇게 그림책을 읽고 생각해 보고 짧은 글을 쓰는 것이라도 해봐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것들이 켜켜이 쌓여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눈을 떠보면 나도 모르게 어쩌다 보니 즐겁게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