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벚꽃이 한창일 때였다. 처음에는 작은 건망증인 줄 알았다. 안경을 쓰고도 안경을 찾고, 방금 먹은 밥을 또 달라고 했다. 가족들은 나이 때문이려니 했다. 일흔아홉, 그럴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한번은 할머니가 고모네 집에서 길을 잃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거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옆집 문을 두드렸다는 것이다. 고모가 황급히 찾아 나섰고, 경비실에서 할머니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 여기가 어디야? 영희 어디 갔어? 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병원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알츠하이머 초기라는 진단이었다. 의사가 - 아직 초기라 약물 치료를 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치는 불가능합니다. 고모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멍하니 서 있었다. 할머니만 태연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약값이 문제였다. 한 달에 30만 원이 넘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신약이었다. 고모가 - 내가 반 낼게요. 아버지가 나머지를 부담하기로 했다. 삼촌은 여전히 빚을 갚고 있어서 여력이 없었다. 할머니의 병은 또 다른 경제적 부담이 되었다.
할머니는 약을 먹기 시작했지만 증상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은지를 보고 - 순희야, 언제 왔니? 하고 물었다. 순희는 죽은 첫째 딸의 이름이었다. 은지가 - 할머니, 저 은지예요, 하자 할머니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은지를 바라봤다. - 은지? 은지가 누구야? 여름이 되자 할머니는 준호도 알아보지 못했다. - 이 아이는 누구야? 잘생겼네. 준호가 충격을 받아 - 할머니, 저예요. 준호요! 하고 소리쳤지만 할머니는 그저 멍하니 웃을 뿐이었다. 그토록 사랑하던 손자를 잊어버린 것이다. 할머니를 모실 사람이 필요했다. 고모는 일을 해야 했고, 어머니도 파출부 일을 쉴 수 없었다. 결국 요양보호사를 고용하기로 했다. 하루 8시간에 5만 원. 한 달이면 150만 원이었다. 약값과 합치면 200만 원 가까이 들었다. 가족의 재정은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느날, 할머니가 집에 왔다. 고모가 출장을 가야 해서 며칠 맡긴 것이다. 할머니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 여기가 우리 집이야? 왜 이렇게 어둡지? 하고 물었다. 어머니가 - 어머니, 여기는 영수 씨 집이에요, 하자 할머니는 - 영수? 영수가 누구야? 하고 되물었다. 저녁 식사 때 할머니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어디 갔어? 어머니가 당황해서 - 어머니, 괜찮아요. 여기 있어요, 하며 달랬지만 할머니는 계속 울었다. 팔십을 바라보는 노인이 엄마를 찾으며 우는 모습은 처연했다.
밤에 할머니는 잠을 자지 않았다. 계속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았다. - 내 돈 어디 갔어? 누가 훔쳐갔어! 천벌을 받을놈! 어머니가 밤새 할머니를 돌봤다. 은지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할머니의 중얼거림이 밤새 들렸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독백이었다. 새벽 무렵, 할머니가 은지 방으로 들어왔다. 은지를 내려다보며 - 순희야, 엄마가 미안해. 너를 먼저 보내서 미안해. 은지는 숨을 죽이고 누워 있었다. 할머니가 은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 예쁜 우리 순희. 엄마가 많이 사랑해. 그 손길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은지는 처음으로 할머니의 사랑을 느꼈다. 비록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지만.
할머니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차야 했다. 고모가 -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고 한탄했다. 아버지가 - 그런 소리 하지 마, 하고 꾸짖었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신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요양원 이야기가 나왔다. 한 달에 200만 원이었다. 집에서 모시는 것과 비용은 비슷했지만 가족의 부담은 줄어들 것이었다. 고모가 - 요양원이 나을 것 같아요. 전문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고. 아버지는 망설였다. - 그래도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건... 그때 할머니가 말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 나 요양원 가고 싶어. 너희들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모두가 놀랐다. 할머니가 계속 말했다. - 내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아. 짐이 되고 있다는 것도 알아. 그러니 보내줘. 은지는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봤다. 정신이 온전할 때의 할머니가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더 잔인했다. 자신이 무너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무력감. 은지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차갑고 마른 손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갔다. 서울 외곽의 조용한 곳이었다. 깨끗하고 정돈된 시설이었지만 왠지 차가워 보였다. 할머니는 들어가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은지를 보며 웃었다. - 순희야, 또 놀러 와. 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 네, 할머니. 자주 올게요. 요양원 생활이 시작되고 가족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면회를 갔다. 할머니는 갈 때마다 달라져 있었다. 어떤 날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고, 어떤 날은 과거 속에 살고 있었다. 한 번은 은지를 보고 - 당신이 우리 영수 아내요? 참 고생이 많아요, 하고 말했다. 은지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의 어느 날, 할머니가 은지에게 선명하게 말했다. - 은지야, 할머니가 미안해. 너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은지는 놀랐다. 할머니가 자신을 알아본 것이다. 할머니가 계속 말했다. - 준호만 예뻐했지. 너도 똑같은 내 손주인데. 미안해. 은지는 울었다. - 괜찮아요, 할머니. 다 이해해요. 할머니가 은지의 손을 잡았다. - 착한 우리 은지. 공부 잘하고 있지? 은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머니가 - 장하다. 우리 은지가 제일 장해, 하고 말했다.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그것이 할머니가 은지를 알아본 마지막이었다. 다음 면회 때 할머니는 은지를 보고 -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완전히 낯선 사람을 대하듯이. 은지는 미소 지으며 -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고 답했다.
할머니의 치매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사랑도, 차별도, 기억도 모두 사라졌다. 할머니는 이제 우리 모두를 똑같이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야 우리는 평등해졌다. 망각이라는 잔인한 평등 앞에서. 하지만 나는 기억할 것이다. 할머니가 나를 순희로 착각하고 쓰다듬던 손길을.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던 순간을. “우리 은지가 제일 장해”라고 말하던 그 목소리를. 비록 늦었고, 비록 짧았지만, 그래도 있었던 사랑을.
겨울이 왔다. 요양원의 할머니는 점점 작아져 갔다. 몸무게가 40킬로그램도 안 되었다. 하지만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더 이상 기억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는 사람의 얼굴. 은지는 그것이 할머니에게는 오히려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