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by 부소유

벚꽃이 한창이던 봄날이었다. 은지가 재판을 준비하며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어머니가 쓰러졌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것이다.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은지가 달려가 어머니를 부축했을 때, 어머니의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가 진단을 내렸다. 과로와 영양실조, 그리고 심한 빈혈이었다. - 환자분이 오랫동안 무리하신 것 같아요. 당분간 입원해서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은지는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머니는 늘 건강해 보였고,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병실에서 어머니는 링거를 맞으며 누워 있었다. 50세. 아직 젊은 나이인데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다. 손은 거칠고 갈라져 있었다. 30년 가까이 파출부 일을 하며 남의 집을 청소한 손이었다. 은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었다. - 엄마, 왜 아픈 걸 말하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힘없이 웃었다. - 괜찮아. 조금 피곤했을 뿐이야. 은지는 어머니의 가방을 열어봤다. 진통제와 영양제가 가득 들어 있었다. 약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약 봉지 사이에 쪽지가 있었다. 가계부였다. 수입과 지출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어머니의 병원비 항목은 없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퇴근 후 병원에 왔다. 어머니를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 당신, 왜 이렇게 됐어. 내가 못나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 당신 잘못 아니에요. 그냥 좀 무리했어요. 두 사람은 말없이 손을 잡고 있었다. 30년 부부의 침묵의 대화였다.


의사가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 자궁에 혹이 있습니다. 수술이 필요해요. 은지와 아버지는 놀랐다. 어머니는 담담했다. - 알고 있었어요. 1년 전부터. 의사가 - 왜 치료를 안 받으셨어요? 이렇게 키우시면 위험합니다. 어머니가 작게 답했다. - 돈이... 수술비가 비싸서. 은지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1년 동안 병을 키우고 있었다. 돈 때문에. 가족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 은지가 - 엄마, 왜 말 안 했어요? 우리가 있잖아요. 어머니가 - 너희들도 힘든데 어떻게 말해. 은지 너는 재판 준비하느라 돈 필요하고, 아빠는 대출 갚느라 힘들고. 수술비는 500만 원이었다. 보험이 적용되어도 그 정도였다. 아버지가 - 할머니 유산 정리되면 돈 나올 거야. 그걸로 수술하자.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 그 돈은 집 옮기는 데 써야지. 애들 위해서. 아버지가 - 당신이 먼저야. 당신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 민수가 병원에 왔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동생은 많이 컸다. 어머니를 보자 울음을 터뜨렸다. - 엄마, 아프지 마. 내가 알바해서 돈 벌게. 어머니가 민수를 안으며 - 우리 민수 다 컸네. 엄마는 괜찮아. 공부나 열심히 해.


다음 날, 은지는 어머니의 파출부 일터를 찾아갔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들이었다. 한 집 주인이 - 아, 이 아주머니 딸이세요? 어머니가 많이 아프신가 봐요. 일 잘하시는데. 은지가 - 네, 수술을 받아야 해서요. 주인이 - 그래요? 빨리 나으시길. 다른 분 구해야겠네. 은지는 어머니가 청소했을 그 집들을 상상했다. 대리석 바닥, 수입 가구, 넓은 거실. 어머니는 그런 집들을 청소하고 반지하로 돌아왔다. 매일 빈부의 격차를 몸으로 경험하며 살았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일주일 후였다. 어머니는 수술 전까지 집에서 쉬기로 했다. 하지만 쉬지 못했다. 집안일을 계속했다. 은지가 - 엄마, 쉬어요. 내가 할게요. 어머니가 - 아니야. 움직여야 덜 불안해. 어머니는 김치를 담갔다. 된장을 만들었다. 반찬을 만들어 냉동실에 채웠다. 마치 오래 집을 비울 사람처럼. 은지가 - 엄마, 왜 이렇게 많이 만들어요? 금방 돌아올 건데. 어머니가 - 혹시 모르잖아. 너희들 밥은 먹고 살아야지..


수술 전날 밤, 어머니가 은지를 불렀다. - 은지야, 엄마가 미안해.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서. 은지가 - 무슨 소리예요. 엄마가 최고의 엄마예요.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다. -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좋은 옷 못 입혀줘서 미안해. 학원 못 보내줘서 미안해. 은지도 울었다. - 엄마, 미안하지 마세요. 엄마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엄마가 새벽마다 도시락 싸주고, 학비 벌어주고, 사랑해주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어머니와 은지는 서로를 꼭 안고 울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고 우는 것 같았다.


수술 당일, 가족들이 모두 병원에 모였다. 삼촌도 왔고, 고모도 왔다. 준호도 일을 빼고 왔다. 어머니가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말했다. - 다들 고마워요. 이렇게 와줘서.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 당신, 잘 다녀와. 우리가 기다릴게. 4시간의 수술이었다. 가족들은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버지는 계속 서성거렸고, 은지는 기도했다. 종교는 없었지만 간절했다. 민수는 참고서를 펼쳐놓고 있었지만 한 글자도 읽지 못했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가 나왔다. -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혹을 깨끗이 제거했어요. 가족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은지는 그제야 눈물이 났다. 긴장이 풀리면서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회복실에서 어머니가 깨어났다. 첫 마디가 -밥은 먹었어? 였다. 모두가 웃었다. 수술을 받고도 가족 걱정을 먼저 하는 어머니. 그것이 어머니였다. 은지가 - 엄마, 이제 엄마 자신을 먼저 생각해요. 어머니가 약하게 웃었다.


입원 일주일 동안 은지는 병원에서 어머니를 간호했다. 어머니가 잠든 사이 은지는 어머니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몰래 읽는 것은 잘못이지만 궁금했다.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은지가 자랑스럽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주어 고맙다. 내가 해준 것은 없지만, 은지는 스스로 빛을 찾았다.’


은지는 일기장을 덮고 울었다. 어머니도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구나. 표현하지 않았을 뿐, 마음속으로는 늘 응원하고 있었구나. 은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 이 손이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어준 것이다.


퇴원하는 날, 어머니는 많이 좋아져 있었다. 얼굴에 혈색이 돌았고, 눈빛도 맑아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 이제 건강해져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겠어. 아버지가 - 당신, 이제 일 그만해. 쉬어. 어머니가 - 아직 일할 수 있어요. 애들 뒷바라지 해야지. 은지가 - 엄마, 이제 제가 돈 벌게요. 엄마는 쉬세요. 어머니가 은지를 보며 - 우리 은지, 든든하네. 그래, 이제 엄마도 좀 쉬어볼까. 처음으로 어머니가 쉼을 받아들였다. 30년 만의 휴식이었다.


오늘 어머니가 눈물을 보였다. 강철 같던 어머니도 아픈 사람이었다. 30년 동안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 이제는 어머니가 쉴 차례다. 내가 어머니를 지킬 차례다. 반지하의 빛은 어머니였다. 그 빛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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