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부소유

은지는 오랜만에 옛 반지하를 찾았다. 이사 나온 지 2년이 지났지만 건물은 그대로였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망설여졌다. 현재 세입자가 있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잠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문을 두드리자 젊은 부부가 나왔다. 아기를 안고 있었다. 은지가 - 제가 예전에 여기 살았어요. 잠깐만 둘러봐도 될까요?


집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습기와 곰팡이가 섞인, 그러나 이제는 향수가 된 냄새. 구조는 똑같았다. 좁은 거실, 작은 방 두 개, 부엌. 하지만 벽지가 새것이었고, 가구도 달랐다. 젊은 아내가 - 저희도 곧 이사 갈 거예요. 아기 키우기엔 너무 습해서요. 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모두가 그랬듯이.


창문 앞에 섰다. 그 작은 창문. 반지하의 유일한 빛이 들어오던 곳. 겨울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은지는 손을 뻗어 그 빛을 만졌다. 따뜻했다. 어린 시절 이 빛을 보며 꿈꿨던 것들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지상으로, 언젠가는 높은 곳으로. 그리고 지금 은지는 그곳에 있었다.


집을 나와 동네를 걸었다. 시장은 여전히 북적였다. 떡볶이 가게, 순대 가게, 과일 가게. 아는 얼굴들도 있었다. 시장 아주머니가 은지를 알아봤다. - 어머, 은지 아니니? 작가 됐다며? 자랑스럽네. 은지는 쑥스럽게 웃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은지는 여전히 반지하에 살던 그 아이였다.


준호의 카페로 향했다. ‘반지하 커피’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준호가 일부러 지은 이름이었다. 카페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동네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원룸에 사는 청년들, 고시원 수험생들. 준호는 그들에게 할인을 해주고 있었다. - 여기 사는 분들은 20% 할인이에요.


준호가 은지를 보고 반가워했다. - 왔어? 오늘 좋은 원두 들어왔어. 특별히 내려줄게. 은지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카페는 1층이었지만 내부는 반지하처럼 꾸며져 있었다. 일부러 조명을 어둡게 하고, 작은 창문만 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늑했다. 반지하의 재해석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은지는 노트북을 켰다. 새 소설의 마지막 장을 쓰려고 했다. 3년 동안 쓴 장편이었다. 제목은 ‘반지하의 빛’. 자전적 소설이면서도 픽션이었다. 할머니, 어머니, 자신으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이야기. 차별과 가난, 상처와 극복의 서사. 이제 마지막 문장만 남았다. 은지는 썼다. ‘그녀는 반지하를 떠났다. 하지만 반지하는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상처이자 뿌리였고, 어둠이자 빛이었다. 그녀는 이제 안다. 반지하의 빛이 무엇인지. 그것은 태양의 빛이 아니라 인간의 빛이었다. 서로를 비추는 작은 빛들.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연대라는 이름의 빛.’


탈고했다. 3년의 집필이 끝났다. 은지는 깊은 숨을 쉬었다. 준호가 다가와 - 끝났어? 하고 물었다. 은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준호가 - 축하해. 이번 책도 대박일 거야. 은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은지는 가족들을 떠올렸다. 2층 빌라에서 텃밭을 가꾸는 아버지. 시를 쓰는 어머니. 아내와 딸과 행복하게 사는 민수.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삼촌. 모두가 은지의 이야기 속에 있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진실한 이야기 속에.


저녁 식탁에 온 가족이 모였다. 민수가 - 누나, 소설 끝났다며? 축하해. 어머니가 - 우리 은지 고생했어. 이제 좀 쉬어. 아버지가 - 딸이 자랑스럽다. 계속 써라. 응원한다. 손녀가 은지의 무릎에 앉아 까르르 웃었다. 이 아이는 은지의 이야기를 읽고 자랄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새 시를 읽어줬다. ‘빛에 대하여’라는 제목이었다.


‘어둠이 깊을수록 / 작은 빛도 크게 보인다 / 반지하 창문으로 들어오던 / 그 희미한 빛이 /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 이제 우리는 안다 / 빛은 위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 옆에서도, 안에서도 온다는 것을’


은지는 어머니의 시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어머니도 반지하의 빛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 빛의 의미를 자신과 같이 이해하고 있었구나. 은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 이 손이 은지를 키웠고, 이제는 시를 쓴다.


밤, 은지는 2층 빌라 창문 앞에 섰다. 별이 보였다. 반지하에서는 고개를 한참 들어야 보였던 별들이 이제는 눈높이에 있었다. 하지만 은지는 알고 있었다. 높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빛을 보는 눈과 빛을 만드는 마음이라는 것을.


고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 은지야, 책 나오면 나도 한 권 줘. 우리 가족 이야기라며? 은지가 - 네, 고모. 드릴게요. 고모가 - 미안해, 은지야. 내가 너한테 못되게 굴었지. 은지가 -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이에요. 고모가 - 그래도... 고맙다. 우리 이야기를 써줘서.


준호도 문자를 보냈다. ‘내 카페에서 북토크 하자. 동네 사람들 다 초대해서. 반지하 사람들의 이야기잖아.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은지는 좋다고 답했다. 그것이 맞다. 이것은 은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였다.


오늘로 나의 이야기를 마친다. 반지하에서 시작해 2층에서 끝난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나의, 우리의, 모두의 이야기가. 반지하의 빛은 이제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책이 되어, 기억이 되어, 역사가 되어. 그리고 누군가는 그 빛을 보고 자신의 빛을 찾을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다. 그것이 삶이다.


은지는 펜을 내려놓았다.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한해의 마지막 새벽이었다. 곧 새해가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해, 새로운 이야기. 은지는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상쾌했다. 멀리서 새벽을 여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렸다.


그때 아버지가 거실로 나왔다. - 벌써 일어났니? 은지가 - 네, 아빠도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버지가 은지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밝아오는 하늘을 봤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했다. - 은지야, 이제 일출이 잘 보이는구나. 은지가 답했다. - 네, 아빠. 우리가 해냈어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있는 이 공간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삶의 조건이고, 기억이고, 정체성의 일부라는 것을. 그들은 반지하를 벗어났지만, 반지하의 빛은 여전히 그들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그들을 더 밝은 곳으로 이끌 것이다. 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