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에게 AI 시대의 지혜를 묻다

느린 사유의 지혜란..

by 부소유

겨울밤,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의 강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교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목이 잠긴 듯했지만, 그의 말에는 24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과 현재 AI 시대를 관통하는 예리함이 담겨 있었다. 강연 제목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AI 시대의 지혜를 묻다’였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묻는다’는 표현이 흥미로웠다. 과연 2400년 전 철학자에게 우리가 무엇을 물을 수 있을까.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나오는 프로네시스, 즉 실천적 지혜를 중심으로 강연을 풀어나갔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핵심이 관찰에 있다고 강조했다. 머릿속에 이상적인 틀을 만들어놓고 현실을 거기에 맞추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현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로부터 공통점을 추출해냈다. 의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해부와 환자 치료 과정을 지켜보며 자란 그는 인간의 눈을 백 개쯤 가진 것 같은 뛰어난 관찰력을 지녔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실천적 지혜의 정의는 명료했다. “자기 자신과 관련해서 좋은 것과 유익한 것을 잘 숙고할 수 있는 능력.” 왜 자기 자신인가. 자기에게 좋은 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유익한 것을 찾아낼 리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처럼, 자기 사랑이 선행되어야 이웃 사랑도 가능하다. 그리스인들이 “나 자신을 알라”를 최고의 지혜로 여긴 이유가 여기 있다. 자기 자신을 모르면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판단하며, 결국 타인의 삶을 살다가 후회하게 된다.


교수는 숙고의 어원을 파고들었다. 영어 ‘deliberation’은 라틴어로 무게를 달다, 즉 저울질을 의미한다. 그리스 법정 입구의 디케 여신상이 들고 있는 천칭저울처럼, 숙고란 여러 가능성의 무게를 정확히 재는 행위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불레우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그리스 민주정의 심의기구인 ‘불레’에서 나온 말이다. 불레에서는 각 부족 대표들이 모여 법안을 심의하며 서로 다른 의견을 개진하고, 과거 사례를 떠올리며, 여러 대안을 비교했다. 이 회의장의 논의 과정이 우리 내면에서 일어날 때, 그것이 바로 숙고다.


숙고의 구조를 보여주는 도표가 흥미로웠다. 상명하복의 직선적 구조와 달리, 숙고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나무 같은 형태다. A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B1, B2, B3의 방법을 생각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면 또다시 C1, C2, C3의 세부 방안을 고민한다. 다층적이고 다선적인 이 사유 과정이야말로 인간 생각의 기본 틀이다. 거짓말을 꾸밀 때도, 과학적 발견을 할 때도, 창작을 할 때도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나온다. 침팬지도 호두를 깨기 위해 돌을 사용하지만, 인간은 호두를 깰 도구를 만들기 위한 도구를 만든다. 도구의 도구, 그리고 그것을 위한 또 다른 도구. 이 끝없는 연쇄가 인간 문명의 핵심이다. 동물도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사용하지만, 2차적 도구를 만들지는 못한다. 교수는 10년간 동물과 인간의 인지 능력 차이를 연구한 끝에 이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빠른 생각, 느린 생각’ 이론도 등장했다. 직관적이고 직선적인 ‘빠른 생각’과 달리, ‘느린 생각’은 분석하고 따지고 상상하며 정신을 집중하는 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숙고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 느린 사유의 생각이 바로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AI가 이 느린 사유까지 매우 빠르게 해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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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이방인의 뫼르소 처럼 살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처럼 속세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호밀밭의 홀든 콜필드 랍니다. 뭐 그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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