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고 대학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2월, 김명상과 나는 같은 전문대학에 합격했다. 나는 전자과, 김명상은 문예창작과였다. 사실 김명상의 성적이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지만, 몸 상태를 고려해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고 했다.
3월 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대학 강당에 수백 명의 신입생이 모였다. 학과 소개와 학교 생활 안내가 이어졌다.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동아리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에 드럼 세트와 앰프, 마이크가 설치되었다. 조명이 어두워지더니 스포트라이트가 무대를 비췄다. 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렉트릭 기타의 날카로운 음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이어서 베이스와 드럼이 합류했다. 그리고 여성 보컬이 등장했다.
김명상의 눈이 반짝였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무대를 응시했다. 보컬의 목소리가 강당을 압도했다. 록 발라드였다. 김명상이 내 팔을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김명상이 일어섰다. 무대로 가는 것 같았다. 실제로 김명상은 무대 앞까지 가서 동아리 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멀리서 보니 김명상이 뭔가 열심히 설명하는 것 같았다. 손짓까지 섞어가며.
돌아온 김명상이 말했다.
- 우리 저기 들어가자. 대중음악 동아리.
김명상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보는 열정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병원과 집만 오가던 김명상에게 동아리는 새로운 세계였을 것이다.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 뒤, 동아리 가입 신청을 했다. 동아리방은 학생회관 지하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오락실과는 다른 종류의 지하 냄새가 났다. 담배와 먼지, 그리고 오래된 악기 냄새가 섞여 있었다.
동아리방 문을 열자 음악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 기타를 치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드럼 스틱으로 연습 패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구석에서는 베이스를 조율하는 소리가 들렸다.
- 신입생이야?
선배 한 명이 다가왔다. 2학년이라고 했다. 이름은 준호. 키가 크고 장발이었다. 전형적인 밴드맨의 모습이었다.
김명상이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노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준호 선배가 김명상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 노래? 한번 들어보자.
즉석 오디션이었다. 김명상이 당황하지 않고 마이크를 잡았다. 반주 없이 부르기 시작했다.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였다.
첫 소절부터 동아리방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김명상을 바라봤다. 김명상의 목소리는 맑으면서도 깊었다. 투명한 몸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고음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준호 선배가 휘파람을 불었다.
- 대박이다. 너 진짜 잘한다. 너 지금 가성 안쓰고 육성으로 부른거야?
김명상이 수줍게 웃었다. 뺨이 붉어졌다. 투명한 피부라 홍조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나도 오디션을 봐야 했다.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통기타를 건네주었다. C 코드를 잡아보라고 했다. 당연히 못했다. 손가락이 줄을 제대로 누르지도 못했다.
- 쿨럭.. 흠.. 흠.. 괜찮아. 처음이니까. 처음엔 다 그래. 그냥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면 돼.
선배가 위로했지만 김명상과의 격차가 너무 컸다. 김명상은 즉시 보컬로 인정받았고, 나는 기타 초보자가 되었다.
동아리 활동이 시작되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정기 모임이 있었다. 김명상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몸이 안 좋은 날에도 나타났다.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아프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첫 합주 시간, 김명상이 선배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곡은 부활의 ‘Never Ending Story’였다. 전주가 시작되고 김명상이 마이크를 잡았다. 스포트라이트가 김명상을 비췄다. 그 순간 김명상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감정이 넘쳤다. 특히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라는 가사 부분에서는 김명상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진짜 감정이었다.
- 야, 너 천재 아니야?
준호 선배가 김명상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른 선배들도 감탄했다. 1학년이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한편 나는 구석에서 기타 코드를 연습하고 있었다. C, G, Am, F... 기본 코드도 제대로 잡기 힘들었다. 손가락이 아팠다. 줄을 누르는 부분에 물집이 생겼다.
김명상이 다가왔다.
- 힘들지?
- 생각보다 어렵네.
- 천천히 해. 나도 노래 처음 배울 때 힘들었어.
김명상이 위로했지만 설득력이 없었다. 김명상은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나와는 달랐다.
4월이 되자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다. 술자리였다. 동아리방 근처 호프집에 20명 정도가 모였다. 김명상은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몸이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투명한 피부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목부터 귀까지 전부 빨갛게 변했다.
- 야, 너 괜찮아?
내가 물었지만 김명상은 손을 저었다.
- 괜찮아. 이 정도는.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그런데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선배들이 노래를 시켰다. 김명상이 일어섰다. 비틀거렸지만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에는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불렀다. 술에 취한 목소리가 오히려 감성적이었다.
- 와, 미쳤다!
선배들이 환호했다. 김명상은 그 환호를 먹고 사는 것 같았다. 계속 노래를 불렀다. 발라드, 록, 댄스곡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술자리가 끝났다. 김명상을 부축해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가는 내내 김명상이 중얼거렸다.
- 좋다... 이런 게 대학 생활이지... 사는 것 같다.
김명상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김명상이 갑자기 울었다.
- 나도 매일 오늘처럼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 술도 마음껏 마시고, 밤새 노래도 부르고...
김명상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로등 불빛에 반짝였다.
다음 날 김명상은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과음 후유증이 심했다고 했다. 사흘을 앓았다. 그런데도 다음 동아리 모임에는 나타났다.
5월, 봄 축제가 열렸다. 동아리 공연이 있었다. 김명상이 메인 보컬을 맡았다. 검은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었다. 마른 몸이 더 마르게 보였지만, 무대 위에서는 거대해 보였다.
첫 곡은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이었다. 하드한 곡이었다. 김명상이 샤우팅을 하며 무대를 누볐다. 점프까지 했다. 의사가 보면 기절할 행동이었다.
관객들이 열광했다. 특히 여학생들이 김명상의 이름을 연호했다. 김명상은 그 함성에 취한 것 같았다.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김명상이 쓰러졌다. 과호흡이었다. 종이봉투를 대고 숨을 쉬게 했다. 진정되는 데 한참 걸렸다.
- 미쳤어? 왜 그렇게 무리해?
내가 화를 냈지만 김명상은 웃었다.
- 재밌잖아. 살아있는 것 같잖아.
그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김명상에게 무대는 삶의 증거였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병든 몸을 잊을 수 있었다.
6월, 기말고사 기간이었지만 동아리 활동은 계속되었다. 김명상은 이제 1학년의 리더가 되었다. 노래를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에게 김명상이 노래를 가르쳤다. 발성법, 호흡법, 감정 표현까지.
- 노래는 기술이 아니야. 감정이야. 네가 느끼는 걸 그대로 전달하는 거야.
김명상이 동기들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김명상이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이유를. 김명상은 매 순간 절실했다. 모든 노래가 마지막인 것처럼 불렀다.
한편 나는 여전히 기타 초보였다. 겨우 코드 체인지를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김명상과 함께 무대에 서고 싶었다.
어느 날 동아리방에서 김명상이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었다. 반주 없이 부르는데도 완벽했다.
- 너 왜 그 노래 불러?
내가 물었다. 김명상이 돌아봤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 그냥. 좋아서.
하지만 뭔가 더 있는 것 같았다. 김명상이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빛이 동아리방을 붉게 물들였다.
- 있잖아, 나 여자 만나고 싶어.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 진짜 사랑해보고 싶어.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김명상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스무 살 청춘의 당연한 욕망이었지만, 김명상에게는 사치 같은 꿈이었다.
그때 동아리방 문이 열렸다. 여학생 한 명이 들어왔다. 미선이었다. 경영학과 1학년, 학기 중 베이스를 배우러 온 신입 부원이었다. 긴 생머리에 큰 눈, 예쁜 외모였다.
김명상의 눈빛이 변했다. 미선을 보는 순간, 김명상의 투명한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나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미선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그날부터 우리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