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바이 C코드

by 부소유

동아리방의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오래된 건물이라 전기 시설이 좋지 않았다. 깜빡일 때마다 내 손의 그림자가 기타 지판 위에서 춤을 췄다. 검지, 중지, 약지를 1번 프렛, 2번 프렛, 3번 프렛에 올려놓았다. C 코드를 잡으려는 시도였다. 벌써 한 시간째였다.


손가락 끝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철제 줄을 누르는 부분에 깊은 자국이 패여 있었다. 통증이 손목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소리는 제대로 나지 않았다. ‘퉁’ 하는 둔탁한 음만 나올 뿐, 맑은 화음은 들리지 않았다.


김명상이 구석에서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미선이 베이스를 조율하는 소리와 김명상의 허밍이 묘하게 어울렸다. 가끔 둘이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광경을 훔쳐보며 더 세게 줄을 눌렀다. 손가락에서 피가 날 것 같았다.


- 힘 빼. 너무 세게 누르면 안 돼.


준호 선배가 다가와서 내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손목의 각도, 엄지의 위치, 손가락의 곡선까지 세세하게 지적했다. 선배가 시범을 보이자 맑은 C 코드 소리가 울렸다. 같은 기타인데 전혀 다른 소리였다.


- 매일 30분씩만 연습해. 한 번에 오래 하면 힘줄 다쳐.


선배의 조언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더 연습하고 싶었다. 김명상처럼 빨리 실력을 늘리고 싶었다. 하지만 기타는 정직했다. 투자한 시간만큼만 실력이 늘었다.


매일 저녁 동아리방에 갔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지하로 내려갔다. 항상 같은 자리, 창가 구석에 앉았다. 거기서 C 코드를 잡고 또 잡았다. 검지가 1번 줄 1프렛을 누르고, 중지가 4번 줄 2프렛을, 약지가 5번 줄 3프렛을 누르는 동작을 수천 번 반복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조금씩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화음의 형태는 갖추었다. 김명상이 지나가다 들었다.


- 오, 나온다!


김명상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곧 미선이 다가와서 김명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다시 집중력을 잃었다. 줄을 잘못 눌러서 ‘띵’ 하는 잡음이 났다.


2주차, G 코드를 배우기 시작했다. C보다 어려웠다. 손가락을 더 넓게 벌려야 했다. 새끼손가락까지 사용해야 했다. 작은 손을 가진 나에게는 고문 같았다.


김명상은 이미 선배들과 합주를 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선 김명상은 빛났다. 반면 나는 여전히 구석에서 기초 코드와 씨름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동아리방에 나 혼자 남았다. 모두 수업이나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갔다. 빈 공간에서 기타 소리만 울렸다. C, G, C, G... 단조로운 반복이었다.


문득 거울을 봤다. 벽에 걸린 전신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구부정한 자세로 기타를 안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 김명상처럼 특별한 재능도, 미선처럼 눈에 띄는 외모도 없었다. 그저 평범했다.


3주차가 되자 Am 코드를 배웠다. C 코드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손가락 하나만 옮기면 되는데, 그 하나가 어려웠다. 코드 체인지를 하려면 순간적으로 손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정확한 위치에 놓아야 했다.


- 속도가 중요해. 천천히 정확하게, 그다음에 빠르게.


준호 선배의 가르침을 따라 메트로놈을 켰다. 딱, 딱, 딱, 딱. 일정한 박자에 맞춰 코드를 바꾸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박자를 놓쳤다. 손가락이 제때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김명상과 미선이 함께 들어왔다.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왔다고 했다. 김명상이 내게도 하나를 건넸다. 이온음료였다.


- 고마워.


뚜껑을 열고 마셨다. 차가운 음료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김명상과 미선은 나란히 앉아서 악보를 보고 있었다. 새로운 곡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둘의 거리가 가까웠다. 어깨가 거의 닿을 정도였다.


4주차, 드디어 F 코드를 배울 차례였다. 기타를 잡은 뒤로 최대 난관이었다. 검지 하나로 모든 줄을 눌러야 했다. 처음 시도했을 때는 아예 소리가 나지 않았다.


- 이건 진짜 연습밖에 답이 없어.


선배도 딱히 방법을 알려주지 못했다. 그저 반복하라고만 했다. 집에 가서도 연습했다. 통기타를 사서 방에 두고 매일 밤 F 코드를 잡았다. 가족들이 시끄럽다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 달이 되는 날, 드디어 C 코드가 완성되었다. 깨끗하고 맑은 화음이 울렸다. 줄 하나하나가 제대로 소리를 냈다. 작은 성취였지만 기뻤다.


- 야, 들어봐!


김명상을 불렀다. C 코드를 쳤다. 완벽한 소리였다. 김명상이 박수를 쳤다.


- 드디어! 이제 시작이네.


시작이라는 말이 맞았다. C 코드는 정말 시작일 뿐이었다. 배워야 할 코드가 수십 개 더 있었다. 하지만 첫 코드를 완성했다는 성취감이 있었다.


그날 밤, 김명상이 제안했다.


- 다음 공연 때 같이 하자. 내가 노래하고 네가 기타 쳐.


놀라운 제안이었다. 아직 초보인 나와 무대에 서겠다는 것이었다.


- 내가 할 수 있을까?


- 할 수 있어. 간단한 곡으로 하면 돼.


김명상이 악보를 꺼냈다. 이 녀석이 동아리에 와서 처음 불렀던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였다. 코드가 단순한 곡이었다. C, Dm, Em, F의 반복이었다.


- 한 달 더 연습하면 충분해.


김명상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로 나와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김명상이 나를 배려하는 것이라는 것을. 실력 있는 선배와 하면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는데, 일부러 나를 선택한 것이었다.


미선이 옆에서 말했다.


- 나도 베이스로 같이 할래.


셋이서 하는 공연이 되었다. 김명상의 보컬, 나의 기타, 미선의 베이스. 어색한 조합이었지만 김명상은 신나 보였다.


연습이 시작되었다. 매일 저녁 세 명이 모여서 합을 맞췄다. 나는 여전히 서툴렀다. 박자를 놓치기도 하고, 코드 체인지가 늦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김명상이 기다려주었다.


- 천천히 해. 우리 시간 많아.


하지만 김명상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김명상의 얼굴이 날로 창백해지고 있었다. 노래를 부를 때도 가끔 숨이 차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김명상은 티를 내지 않았다.


연습 중간에 쉬는 시간, 김명상과 미선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봤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미선이 김명상을 보는 눈빛이 남달랐다. 걱정과 애정이 섞인 눈빛이었다.


나도 미선을 좋아했다. 하지만 김명상도 미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선이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도 어렴풋이 느꼈다.


공연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나의 기타 실력은 겨우 무대에 설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곡을 망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어느 날 연습이 끝나고, 김명상이 내게 말했다.


- 너 정말 많이 늘었어. 한 달 만에 이 정도면 대단한 거야.


-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 비교하지 마. 너는 너야. 네 속도대로 가는 거야.


김명상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기타를 들었다. 김명상도 기타를 칠 줄 알았다. 능숙하게 코드를 잡고 아르페지오를 연주했다.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 이 곡 알아?


고개를 저었다. 김명상이 웃었다.


- 내가 만든 거야. 아직 가사는 없어.


김명상이 만든 멜로디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다. 마치 김명상의 삶을 닮은 것 같았다.


- 언젠가 이 곡에 가사를 붙일 거야. 그때 네가 기타 쳐줄래?


약속했다. 김명상이 가사를 쓰면 내가 기타를 치기로.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알 수 없었다.


무대에 서기 일주일 전,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 조명을 받으며 실제처럼 연습했다. 내 손은 떨렸다. C 코드를 잡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김명상이 노래를 시작했다. “굳바이 얄리..." 김명상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내 서툰 기타 소리도 그 목소리와 어울렸다. 미선의 베이스가 리듬을 잡아주었다.


곡이 끝났을 때, 준호 선배가 말했다.


- 좋은데? 진짜 좋아.


다른 동아리 부원들도 박수를 쳤다. 한 달 전에는 C 코드 하나 제대로 못 잡던 내가 무대에 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무대가 김명상과 함께하는 마지막 무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했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C 코드를 잡는 데 한 달이 걸렸다. 하지만 그 한 달은 단순히 기타를 배운 시간이 아니었다. 명상이와 함께한 시간이었고 내가 조금씩 성장한 시간이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