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시스트

by 부소유

미선이 동아리방에 들어올 때마다 공기가 바뀌었다. 담배 연기와 먼지로 탁했던 지하 공간에 갑자기 봄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항상 샴푸 향을 풍기며 들어왔다.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하는 사소한 동작조차 우아했다.


처음 본 날부터 미선은 특별했다. 경영학과 1학년이라고 했다. 우리와 같은 학년이었다.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서 베이스를 처음 잡는다면서도 일주일 만에 기본 리듬을 익혔다. 손가락이 길고 가늘어서 지판을 누르는 모습이 그림 같았다.


김명상은 미선이 들어온 뒤로 변했다. 더 자주 웃었고, 농담도 많이 했다. 노래를 부를 때도 미선을 의식하는 것 같았다. 특히 사랑 노래를 부를 때는 대놓고 미선을 바라봤다. 미선은 그런 김명상의 시선을 받으며 수줍게 웃었다.


나도 미선을 좋아했다. 하지만 김명상처럼 대담하지 못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기타를 연습하다가도 미선이 오면 집중력을 잃었다. 손가락이 엉뚱한 프렛을 눌렀다. 불협화음이 났다.


어느 목요일 저녁, 동아리 회식이 있었다. 학교 앞 삼겹살집에 모였다. 미선은 김명상 옆에 앉았다.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지만 나는 속이 쓰렸다. 건너편에 앉아 둘을 바라봤다.


김명상이 미선에게 상추쌈을 만들어 주었다. 미선이 받아먹으며 웃었다. 김명상의 창백한 얼굴에 홍조가 올라왔다. 투명한 피부라 감정이 다 드러났다.


- 미선아, 노래 하나 불러줘.


준호 선배가 요청했다. 미선이 손을 저었다.


- 저 노래 못해요. 베이스만 칠 줄 알아요.


- 에이, 한 곡만.


선배들이 계속 졸랐다. 결국 미선이 일어섰다. 아이유의 ‘좋은 날’을 불렀다. 목소리가 맑고 청아했다. 전문 가수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김명상이 가장 크게 박수를 쳤다.


- 미선이 노래도 잘하네! 나랑 듀엣하자.


김명상의 제안에 미선이 얼굴을 붉혔다.


- 안 돼. 명상이가 너무 잘해서 비교될 거야.


이름을 편하게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같은 학년이니까. 하지만 그 친근함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회식이 끝나고 2차로 노래방에 갔다. 김명상과 미선이 진짜로 듀엣을 했다. ‘잔소리’라는 곡이었다. 둘이 마이크를 나눠 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불렀다. 커플송이었다.


노래방의 형광등 아래서 미선은 더욱 예뻐 보였다. 검은 머리가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눈이 반짝였다. 김명상을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분명 호감이 있었다.


나는 구석에서 맥주를 마셨다. 쓴맛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누군가 내 차례라고 마이크를 건넸지만 거절했다. 노래할 기분이 아니었다.


다음 날, 동아리방에서 기타를 연습하고 있을 때 미선이 다가왔다.


- 기타 많이 늘었네.


편하게 말을 놓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같은 학년이라는 동질감이 있었다.


- 아직 멀었어.


- 아니야. 진짜 많이 늘었어. 처음 봤을 때랑 완전 달라.


미선이 내 옆에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속눈썹이 길었다. 목에 작은 점이 있었다.


- 너는 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어?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김명상을 따라온 것뿐이었다.


- 그냥... 멋있어 보여서.


- 명상이 때문 아니야?


미선이 웃으며 물었다. 들킨 것 같아 당황했다.


- 명상이가 네 얘기 많이 해. 제일 친한 친구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쭉 함께였다고.


김명상이 내 얘기를 했다는 것이 의외였다.


- 너희가 부러워. 그렇게 오래된 친구가 있어서.


미선이 베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손톱에 투명한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 근데 명상이, 많이 아픈가 봐?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미선도 눈치챈 것이었다. 김명상의 창백한 얼굴, 가끔씩 보이는 고통의 흔적들을.


- 응... 좀 그래.


자세히 설명할 수 없었다. 김명상의 병은 김명상이 직접 말해야 할 일이었다.


며칠 뒤, 축제 준비로 밤늦게까지 연습했다. 세 명이서 ‘날아라 병라리’를 수십 번 반복했다. 내 손가락은 이제 익숙하게 코드를 짚었다. 미선의 베이스가 단단한 리듬을 만들었다. 김명상의 목소리가 그 위에 얹혔다.


연습이 끝나고 정리를 하는데, 김명상이 갑자기 쓰러졌다.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선이 비명을 질렀다.


- 명상아! 명상아!


나는 재빨리 김명상을 붙잡았다. 의식은 있었지만 온몸에 힘이 없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 괜찮아... 그냥 좀 어지러워서...


김명상이 억지로 웃으려 했지만 초점이 흐렸다. 미선이 물을 가져왔다. 김명상이 조금씩 마셨다.


-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미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김명상이 고개를 저었다.


- 괜찮아. 이런 일 자주 있어.


그 말에 미선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자주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김명상을 부축해서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를 쐬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미선이 김명상의 다른 팔을 잡았다. 셋이서 천천히 걸었다.


- 미안. 연습 망쳐서.


김명상이 중얼거렸다.


- 무슨 소리야. 네가 무리한 거지.


미선이 김명상을 타박했지만 목소리에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김명상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오는 길, 미선과 단둘이 남았다. 정류장까지 함께 걸었다. 가로등 불빛이 미선의 얼굴을 비췄다.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 명상이... 많이 아픈 거 맞지?


미선이 물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 응.


- 어떤 병이야?


- 희귀병이야. 혈관이 약해지는...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미선이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맺혔다.


- 그래도... 나을 수 있는 거지?


대답할 수 없었다. 미선도 내 침묵의 의미를 이해한 것 같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불공평해. 왜 하필 명상이가...


미선의 눈물을 보며 깨달았다. 미선은 이미 김명상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단순한 호감을 넘어선 감정이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