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자리 8

by 부소유

바람이 불었다. 겨울의 바람은 차갑고 건조했다. 양 소장은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손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꺼내보니 맨소래담이었다. 병원 가기 전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은총이 다리에 바르려고. 양 소장은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삼십 년을 아파트에서 일하는 동안 수많은 이별이 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떠났고, 매일 인사하던 입주민이 이사를 갔고, 경비원들이 바뀌었다. 은퇴할 때도 담담했다. 감사패를 받고 악수를 하고 문을 나서면서, 약간의 서운함은 있었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사람을 보내는 일에는 나름대로 단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 한 마리가 남긴 빈자리가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사람은 떠나면서 말을 남긴다. 고맙구나, 수고했다, 건강하고, 잘 지내라. 그 말들이 이별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다. 하지만 은총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말 대신 체온을 남겼고, 발톱 소리를 남겼고, 무릎 위의 무게를 남겼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라졌을 때 남는 것은, 말로 메울 수 없는 종류의 공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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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이방인의 뫼르소 처럼 살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처럼 속세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호밀밭의 홀든 콜필드 랍니다. 뭐 그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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