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 모습을 보여줄 사람이 있나요?

Part6. 봉인해제를 해 줄 사람

by 부캐스트

남편이 세상 작아 보였던 때가 있었다.

항상 강해만보였던 그가 한없이 무너지던 모습을 본 것은 연애 100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날의 빡쳤던 일, 기뻤던 일 모두 재잘거리는 나와 다르게 본인 얘기를 잘하지 않았던 그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만 알았다.

꿈을 위해 일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갖은 부당함과 굴욕들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던 그날, 남자도 이렇게 서럽게 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주저앉아 있는 그에게 단 한 마디의 위로도 건넬 수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참았던 감정들을 다 쏟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

항상 그가 내게 내어주던 팔을 이번엔 내가 내밀어 팔베개를 해주었고 그것이 우리 관계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아예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상남자인 줄만 알았던 그가 갑자기 아이가 되어 버렸다.

스무살부터 자취를 해온 그가 양말 하나 찾지 못하고 내게 부탁하거나, 꼼꼼한 성격의 사람이 교통카드를 못 찾고 찾아달라고 하거나, 큰 덩치로 몸에 안 맞게 아이처럼 애교를 부리거나.


누군가의 팔에 기대어 본 것이 처음이란다.

어린 나이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며 그 흔한 장난감 사달란 떼 한 번 부릴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가장 힘들 때 한 번 기댔던 내 팔이 어릴 적 부재였던 부모님 같았고 이 세상 유일한 본인 편 같았다고..


남편의 표현으로는 '봉인해제'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속이거나 무시당하는 삶을 살다 보니 항상 강한 모습만 보여야 했던 그의 진짜 모습을 그깟 내 팔베개가 껍질을 벗겨줬다고 했다.



연애 10년에 신혼 4개월 차인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밖에서는 여전히 강인하고 뭐든 알아서 척척 해내는 모습의 그는 집에만 오면 아무것도 못하는 6살 아이가 된다. (미운 네 살은 아니라 다행이다)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그 팔베개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거라고 말하곤 한다. 나 또한 봉인해제된 그 덕분에 내게는 없는 줄만 알았던 애교와 감성적인 면을 찾게 됐으니까.

나의 진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내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큰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 드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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