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진 무기는 무엇인가요?

Part8. 스펙을 숨기고 싶을 때.

by 부캐스트

요즘 드라마 '미생'을 정주행 중이다.

최근 볼 만한 콘텐츠들을 다 봐버렸더니 언제나 그랬듯 넷플릭스를 켜면 뭘 봐야 할지 구경만 하다가 결국 끄기 일쑤였다. 분명 예전에 봤던 기억인데 갑자기 왜 끌렸는지는 모르겠는 '미생'.


치열한 무역상사 영업팀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너무나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스스로는 잘했다 생각했지만 상사에게 항상 깨지던 인턴 이야기부터, 사내 정치싸움과 라인타기, 남초회사에서 버티기 위한 여직원의 몸부림, 일을 잘해도 고졸이라는 이유로 받는 각종 설움, 사적인 감정으로 인한 공적인 불합리함, 소신을 지키면 오히려 이상한 낙인이 찍히는 이야기까지. 웹툰 원작을 보진 않았지만 분명 작가는 실제 회사생활을 해본 사람이었으리라.


특히나 주인공인 장그래(임시완)와 여직원 인물들에 공감이 많이 됐다. 지방 국립대 출신으로 남초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뭐든지 열심히 했던 첫 회사생활이 떠올라서인가 보다.


어느 대학 나왔다고 했지 이팀장?
거기가 어디 있는 거야?


아직도 낯뜨거웠던 그때의 감정이 잊히지 않는다.

어벤져스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TF팀에 소환되어 회식을 하던 첫날, 본부장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귀 기울이고 있던 그 순간에 본부장님이 내게 물으셨다.


그동안 결과로 보여주며 잘 감춰왔다고 생각했는데..

훅 들어온 그 질문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 저는 00도에 있는 학교 나왔습니다."

"고기 다 익어서 드셔도 됩니다."


지금 생각해도,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익지도 않은 고기를 급히 꺼낸 내 손을 자르고 싶다...!

최단기 여자 팀장 타이틀을 달고 항상 당당하던 내 모습을 봐왔던 팀원들은 으레 인서울이라 생각했을 텐데.. 방금 내가 너무 허둥지둥했나..라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뜨거워졌던 내 볼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00님은 빼요,
어쩌겠어요 뭐 저희가 다 해야죠.


후임들이 생겨날 때쯔음, 길거리 오프라인 홍보를 준비할 때 들었던 소리다. 무거운 홍보물들을 길가에 옮기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모아야 하니 유일한 여자인 나를 배려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업무에 배제하려는 어느 직원의 말.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여주는 것이었다.

지방대라서 안되고 여자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퇴근하고 들어온 나에게 엄마가 잠결에 벌써 출근하냐는 말을 했을 정도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새벽 퇴근이 일상이었다.

남들보다 여러 번 옮기더라도 내 분량의 짐들을 다 나르고, 강남역 한복판에서 목에 확성기를 삼킨 것 마냥 큰소리로 행인들에게 홍보물을 완판 시켰다.


미생 속 YES맨인 장그래처럼 상사가 시키는 일은 모두 받아들였다. 까라면 까는 회사의 분위기도 있었지만, 안될 것 같은 일도 우선 받아들이고 윗분들의 기대에 맞게 실행한 다음 결과로써 안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래야 먹혔다. 아무리 말로, 기존 히스토리로 반대의견을 내도 당시 그놈의 윗분들은 일단 본인 말을 실행하는 직원을 좋아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식한 행동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을 하고, 더 탄탄한 근거로 반증했으면 됐을 텐데 그땐 그럴 깜냥이 안 됐었나 보다.


개버릇 남 못 준다고 9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내 무기는 '실행력'이다. 내가 해야 하는 일, 맡은 일은 어디부터 건드릴 지 계획을 짜고 데드라인에 맞게 움직인다.

다만 이제는 반증할 근거를 데이터로 더 구체화하고, 쌓인 연차만큼이나 업무와 개인시간의 밸런스를 좀 더 맞추는 정도랄까.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업무성향들을 보게 되는 것 같다. 누구는 숫자에 강하고 누구는 크리에이티브에 강하고.

당신의 무기는 무엇인가요? 본인이 가진 무기가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무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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