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계획형인 탓에 한순간의 즐거움보다 언젠가 필요할 때 쓰기 위한 돈을 모아두는 것이 당시 내가 돈을 버는 이유였다. 문득 생각에 잠기기 전까진.
폐지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분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우연히 보게 됐다. 한평생 모은 돈 한 번 못 써보고 뭐가 그리 급해 갔나고 울며 말하던 이웃의 인터뷰까지.
비슷한 시기에, 어렸을 적 자주 뵙던 부모님의 친구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인 사업이 잘 되어 꽤 부유하게 지내신다는 얘기만 들었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뇌질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돈을 모으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지만, 그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현재를 너무 즐기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딱 그 시기에 유행하던 말이 있었다.
YOLO. (You only live once.)
식당이든 책이든 '현재의 나'에 집중해 살자는 기조가 어딜 가든 가득했다. 예전의 나였으면 비현실적인 말이라며 질색했을 테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만 보며 살기엔 참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었다.
제일 어려운 것이 '적당히'라곤 하지만, 이때부터 난 적당히 미래를 준비하면서 적당히 현재도 즐기기로 타협했다.
우가소. 우리가 직접 정한 신혼집 가훈을 소개합니다.
"삶의 질?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인데"
냉장고에 붙어 있던 이 종이를 보고 친동생이 물었다.
-양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살자는 야심찬 뜻이야!
단순히 현재의 삶을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닌,
현재와 미래 모두를 위해 질을 높이는 삶을 사는 것.
단순히는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워만 먹다 에어프라이기를 구매해간편한 튀김요리를 먹는 것부터, 남편과 서로 좋아하는 공통된 취미를 찾아 퇴근 후 즐기는 것, 좀 더 심오하게는(?) 월세로 살다 대부분 은행 지분이어도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만든 것까지. 이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우리의 수단이었다.
어릴 땐 흔히 가훈이 집에 붙어 있던 걸로 기억한다.
(아빠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부모님이 정한 와닿지 않는 모토 말고, 이제는 우리 부부 인생의 뜻을 가훈으로 삼아보려 한다.
혹시 결혼 후 가훈을 정해본 적 없다면,
한 번쯤은 인생 좌우명에 대해 이야길 나누며 뜻을 맞춰보는 것은 어떨까. 별 것 아닌 문구이지만 지나갈 때마다 보이는 냉장고에 붙여두니 무의식적으로 곱씹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