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캐스트 Jul 12. 2023

만약 배우자가 사망한다면?

Part15. 결혼 후 가장 펑펑 운 날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


그저 연애 때부터 해오던 '만약에' 놀이일 뿐이었다.

-여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거야?

-둘 중에 골라봐, 내가 남사친과 단둘이 낮에 술 먹기 vs 남사친과 단둘이 밤에 카페 가기. 하나 둘 셋!


여느 때처럼 침대에 누워 각자 유튜브를 보며 쉬고 있던 밤이었다.



OO에서 교통사고 나서 남편은 크게 다치고 아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대. 어떡하냐..

-아이코야.. 여보는 내가 없으면 어떨 것 같아?


와.. 진짜 상상이 안되는데..

-'만약에' 놀이잖아, 빨리 상상해 봐.


여보가 없으면? 이 집에? 아무 데도 없다?

-응, 이젠 연애 때랑은 좀 다른 느낌이잖아. 어떨 것 같아?


(.....)

-응? 어떨 것 같냐고~~


(.....)


말이 없길래 남편 쪽으로 몸을 돌려보니 조용히 울고 있는 게 아닌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허그해야 힐링되는데 여보가 없는 거잖아. 연애 때 자취방에도 여기저기 여보 흔적들이 있었는데 여긴 우리의 집이잖아, 우리가 같이 만들어낸 우리 집이잖아. 인테리어부터 그냥 모든 것들에 다 여보가 있는데 어떻게 살아."


그러네 모든 공간, 모든 곳에 서로가 있는데 없는 거네.

남편의 얘길 듣다 보니 나도 코끝이 찡해져 왔다. (이 와중에 갬성파괴자인 나는 내 사망보험금으로 대출금을 갚고 이 집에서 여생을 편히 살라며 안아줬다.)



한참을 같이 울고 웃으며 얘길 나누다 넘어간 주제는 과연 이 집에 살 것인가. 나는 이 집에 살 수 없다. vs 남편은 이 집을 떠날 수 없다.


이 집에서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남편의 흔적이 있고 가뜩이나 재택근무로 집에 있는 내겐 집에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친정에 가서 지내기엔 온전히 슬퍼할 겨를 없이 밝게 있어야 할 것 같아 월세방이라도 얻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같은 이유로 이 집을 떠날 수 없단다. 내 남은 흔적까지 모조리 없어지는 느낌이라고. 내가 주말마다 뭐 할지 계획을 적어둔 칠판을 보며 평생 매주말을 똑같이 보낼 거라고 했다.



그날 이후 요즘 우리의 유행어는 "소중해"이다.

평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느낀 날이었달까.


시간이 흘러 또다시 당연하게 느껴질 때쯤 다시 이 주제로 '만약에' 놀이를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MBTI를 얼마나 믿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