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반지하주택, 지하상가 등 바닥에 물이 차오르거나 하수 역류시 즉시 지상으로 대피해주세요.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은 빗물 유입 시 출입을 금지해주세요.
올여름 맑은 날씨를 보기 어려울 거라는 말을 내심 믿지 않고 있었는데 근래 진짜비가 많이 왔다.
연속되는 재난 문자를 받고도 9층에 살고 있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보니 남편 출근 외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재난 안전문자를 받은 며칠 전 밤이었다.
'응? 어디서 물소리가 나는데?'
TV를 보던 중 베란다 쪽에서 비가 내리는 소리가 아닌, 물이 흐르는 듯한? 수영장에서 들을 만한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연 베란다는 처참했다. 아파트 옥상에서부터 1층까지 이어진 배수 우수관에서 물이 내려가지 않아, 좀만 늦게 문을 열었어도 문을 못 열만큼 물이 차있었다.
"여보! 일어나봐 물난리 났어!"
일찍 잠들었던 남편을 깨웠다.벌떡 일어난 남편은 쓱 보더니 기다란 집게와 장갑을 챙겨 베란다로 나갔다. 혹시 우리 집에서 아랫집으로 내려가는 하수구가 이물질로 막혀있나 한참을 집게로 뒤적여봤지만 물은 계속해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베란다에 있던 큼직한 물건들을 옮기며 넘친 물의 높이라도 낮출 물을 퍼낼 바가지를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몇 번 물을 퍼다 날랐지만 계속해서 퍼붓는 물을 없애기엔 역부족이었다.
남편은 20여 년 자취생활을 했지만 모두 베란다가 없는 오피스텔이었을뿐더러 집에 물이 새거나 넘칠 일이 없는 환경에서 살았다. 나는 쭉 부모님과 함께 살다 결혼으로 처음 독립을 해본 터라 비슷한 상황이 있더라도 보통 아빠가 모두 해결하셔서 직접 무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각자 살다 만난 우리에게 둘 다 경험 없는 일이 발생했고, 남편은 본인이 생각한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자 잠시 사고회로가 멈춘 듯했다.
남편 말대로 바가지로 물을 퍼내면서 생각했다. 예전에도 비가 억수로 많이 왔을 땐 괜찮았는데 왜 오늘은 넘치는가? 뭐가 달라졌지? 아! 트랩을 설치했지!
몇 달 전 베란다에서 바퀴친구를 만난 이후 약을 치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고 그들의 이동경로인 하수구를 차단하는 게 직빵이라는 글을 봤다. 그날 바로 숨고로 하수구 트랩설치 전문 기사님을 불러 베란다와 세탁실 하수구에 트랩을 설치했고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바퀴친구들을 본 적이 없다.
"여보, 우리 트랩 설치한 거 그게 새삥이라 물 내려가는 게 잘 작동 안 하는 거 아냐?"
남편이 트랩을 살펴볼 동안, 관리소에 전화하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관리소에 전화를 걸었고 야간에 상주하시는 관리인 분이 바로 출동해주셨다.
원인은 우리가 설치한 트랩이 맞았나 보다.
늦은 밤 와주신 관리인분께 민망하게도 오시기 전 트랩을 만진 후 물이 내려가기 시작한 것..! 막상 내가 불렀지만 지식이 전무한 나는 뒤로 빠져있었고, 남편은 관리인분과 우수관을 보며 한참 얘기를 나누다 혹시 모르니 내일 옥상과 아랫집 우수관을 점검해 줄 것을 당부하며 결과를 알려달라고 휴대폰 번호를 건넸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은 이럴 때 쓰나 보다.
전형적인 T, S유형인 나는 원인과 해결책을 찾았고 멀리 보는 F, N유형인 남편은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물건 옮기기, 물 빼기를 실행해 더 큰 피해를 막았다.
신혼집에서 둘 다 처음 겪는 상황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우리의 합이 빛났던(?) 일화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