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보면 빡치는 순간이 참 많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말도 안 되는 업무를 지시받아서, 열심히 준비한 프로젝트 결과가 좋지 않아서, 소통에서 애로사항이 있을 때... 등등 그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개인적으로가장 빡치는 순간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 같다. 무조건 안된다고만 말하는 유관부서와의 협업할 때, 실무와 멀어지신 윗분들의 업무지시가 현재 상황과 맞지 않을 때 순간 화가 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이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바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은, 시간도 감정소비도 항상 많이 든다.
얼마 전 파트미팅에서 한 팀원의 감정이 폭발한 순간이 있었다.
신규 프로젝트를 준비하려 하는데 타부서에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 팀내 다른 파트의 의견은 어떤지 확인한 뒤 우리 팀의 종합적인 의견을 모아 타부서를 설득할 계획이었다.
팀원 F가 프로젝트의 진행 배경과 우리 파트의 의견에 대해 리뷰를 하였고 현재 유관부서에서 반대하는 부분에 대한 발표를 마쳤다. 사실 이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긴 했다. 리뷰하는 모습이 굉장히 하기 싫고 빡친 듯한 느낌이 물씬 났다.
나 :"A안 말고 B안으로 진행하면 타부서도 괜찮지 않아요?"
프로젝트 진행은 할 수 있으면서 타부서의 반대 이유인 리소스부족도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의견을 제시했다.
F :...(무표정)
다른 파트 팀장 : "그러게요, B 방안대로면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이 방법도 반대하던가요?"
F : "... 네. (무표정)"
(중략)
이사님 : "개발팀에선 뭐래요? 개발만 수월해도 운영은 다시 논의해 볼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
F : ...(똥씹은 표정)
팀장 : "안 그래도 큰 개발 없이 진행할 수 있는 방법 찾아서 지금 테스트 중인데 오류가 나서요, F님 그때 오류 확인해 보기로 한 거 확인 됐어요?"
F : ...아뇨
팀장 :응? 2주 전부터 확인하기로 한 건데 확인했어야지
F : 못했어요.
이 말을 끝으로 팀원 F는 온라인 미팅의 화상 카메라도, 마이크도 갑자기 꺼버렸다. 순식간에 미팅 분위기는 이상해졌고 팀장님이 F와 따로 얘기하겠다며 급히 미팅은 종료되었다.
미팅에 있던 다른 분들의 심히 당황한 표정을 봤지만 나는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라서 태연했다.
팀원 F는 예전부터 감정적인 순간이 있을 때 울며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넌지시 본인이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었으나 이런 상황이 오면 정상적인 이해범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분명 F는 이날도 감정을 주체 못 해 눈물을 참느라 화면을 껐으리라.. 내 추측으로는,
1) 어떻게든 하자는 우리 부서, 어떻게든 반대하는 타부서 사이에서 의견 조율하는 것이 힘이 부쳤다.
2) 신규 프로젝트가 아니어도 일이 넘치는데 이것까지 하려니 빡이 쳤다.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주니어 입장에서 충분히 힘이 부칠 상황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표현하고 해결하는 방법은 잘못되었다.
의견조율이 힘들었다면 이 상황을 파트 내에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했어도 되었고, 일이 많다면 이 부분 또한 업무기한을 늘리는 방향을 논의해 봐도 좋을 일이었다.
팀원 F와 면담을 하고 온 팀장님이 공유해 준 내용 역시 내 추측이 맞았다. 요즘 일이 너무 많은데 인사평가 점수는 계속 낮고, 게다가 신규 프로젝트까지 담당하려니 감정이 미팅 때 폭발했다는 것.
그간 팀원 F에게 일련의 업무태도에 대해 충고해 준 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마찬가지로 울며 미팅을 뛰쳐나갔었다. 본인이 뭘 그리 잘못했냐며.. 도움을 주고자 자리를 마련한 것이지만 본인을 지적하고 욕하는 것으로 느끼는 그에게 더이상의 충고는 하지 않았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이 일이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면 그의 인성과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려 어떻게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곳이다.
'회사'라는 곳의 특수성은 어느 곳보다 크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그만큼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지만 매일 본인의 감정을 컨트롤하며 티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상한 곳인 것 같다.
K-직장인이라면 많은 빡침의 순간이 있어도, 평정심을 잘 유지하고 개인의 감정이 업무 태도가 되지 않게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10년 차인 지금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힘들 때가 있긴 하지만, 재택근무의 이점으로 온라인 미팅이 끝나면 혼잣말을 하며 순간의 감정을 털어내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됐다.
본인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정답은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감정 조절이 되는지 스스로 잘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