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구축 아파트라 마음의 준비는 했었지만 마음이 착잡해졌다. 우리가 꾸미고 싶은 대로 맘껏 인테리어를 해보자는 당찬 포부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갈아엎어야 하지..?
자고로 중문이 있어야 구축이지..
도저히 23평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전주인은 방처럼 사용하신 좁은 거실과 주방 사이의 중문은 내 마음처럼 갑갑하게 느껴졌고,
30년 간 수리한 적 없는 주방..
체리색인지 똥색인지 모를 나무로 뒤범벅된 주방은 내 마음만큼 어두웠으며,
형형색색 타일들..
가장 근심이 많았던 화장실은 욕조를 떼어낸 자리에 아무렇게나 덧붙인 듯한 여러 종류의 타일들과 누런 세면대가 반기고 있었다.
안녕? 난 존재감 강한 냉장고야:)
번외로 전주인분은 주방이 좁아 냉장고를 화장실 옆에 두셔서 화장실 불을 켜려면 냉장고 뒤로 조심히 손을 넣어야 했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던 베란다도 부속품들은 녹이 슬다 못해 만지면 쇳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이때부터 데이트를 하던 전화 통화를 하던 한동안 우리의 화두는 인테리어였다. 이 집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남편 스타일 : 미국 가정집st (?)
남편은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에 어지럽진 않지만(난 어지럽지만..) 포근한 느낌의 무늬들이 있는, 나홀로집에 같은 영화에서 본 듯한 미국 가정집(?) 스타일을 선호했다. 일찍부터 독립해서 혼자 살아와서 그런지 미니멀하고 깔끔한 것보다는 꽉 차고 따수운 느낌의 집을 원했나 보다.
내 스타일 : 미니멀 & 모던 & 모던 & 모던
나는 정반대로 최대한 미니멀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넓은 집이었다면 남편이 원하는 스타일을 고려해 봤겠지만, 위에서 봤다시피 이 집은 평수보다 좁아 보이는 타입이라 최대한 뭐가 없어야만 그나마 넓어 보일 것 같았다. 결혼 전까지 캥거루족이었던 나는 아무리 리모델링을 해도 살면서 짐이 생기게 되면 지저분해 보인다는것을 알아서 더 그랬나 보다.
의견은 달랐지만 큰 호불호 없이 내게 맞춰주는 남편 덕에 의견 조율을 할 것도 없이 내 스타일로 가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인테리어 업체를 알아보기 전,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맘에 들면 무조건 캡쳐!
가장 먼저 한 것은 최대한 많이 보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장판의 종류,타일의 너비 하나에도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컬러여도 질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고 특히 후순위였던 조명의 중요성도 새롭게 알게 됐다.
두 번째는 메인 컬러 정하기.
구역에 따라 세부 컬러는 다르게 가더라도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을 내려면 통일된 컨셉 컬러가 필요했다.모던한 스타일에 넓어 보이는 것에 포인트를 둔 만큼, 메인 컬러는 화이트 앤 그레이로 정했다.
세 번째, 우선순위 정하기.
돈의 한계가 없다면 하고 싶은 걸 모두 때려박을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여러 인테리어를 보다 보니 작은 것 하나도 모두 추가비용이었기에 예산 안에서 놓칠 수 없는 몇 가지를 정해 보기로 했다.
먼저 거실과 주방 사이에 중문, 문틀벽 없애기. 현관에서부터 탁 트인 느낌에 전체적으로 넓어 보이기 위해서 가장 1순위는 중문과 툭 튀어나온 문틀벽을 없애야만 했다.
2순위는 베란다 확장. 구축이라 그런지 평수에 비해 베란다가 쓸데없이 넓었다. 이 장점을 살리면서 앞으로의 활용도를 위해 거실과 붙은 베란다를 확장하고 접히며 열리는 폴딩도어를 설치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미니멀과 깔끔함을 위해선 충분한 수납공간이 필요했다. 물건들을 밖에 두지 않고 안에 꽁꽁 숨기고 싶었다. 방마다 붙박이장을 두고 주방과 세탁실에도 최대한 수납장을 두기로 했다.
원하는 신혼집의 모습을 정리하다 보니 얼추 전체적인 윤곽이 잡혀갔다. 이때만 해도 어느 정도 인테리어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