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였던 공무원 학원은 1개의 강의스케줄이 끝나는 2개월 주기에 맞춰 직원들도 인사이동을 했다.
입사 4개월 차에 배정받은 팀은 이제 막 9급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관리하는 9급 이론팀.
가장 처음 시작하는 이론 강의라 학생수가 가장 많은 반이었고 이들을 잘 관리해야만 다음 커리큘럼도 등록하기 때문에 강사진들도 모두 1타 강사진으로만 이루어진, 일명 가장 메인 팀이라 불렸다. 소위 회사에서 제일 일 잘한다고 소문난 팀장님, 그리고 나보다 1년 먼저 입사한 팀원 B와 함께.
B는 뭐든 열심히 하며 서글하고 엉뚱한 성격으로 누구와도 잘 지내는 분이었다. 나만 빼고..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나에겐 딱딱했고 사무적이었으며 이전 팀에서 만난 사수처럼 깨달음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내게 일만 끊임없이 던져줄 뿐이었다.
동기들과 퇴근 후 치맥약속이 잡힌 어느 날.
퇴근시간이 지나 시계를 보며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있던 때쯤에도 그는 어김없이 갑자기 일을 주었다. 사무실 밖에서 동기들이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문 틈으로 보이는 동기들에게 체념한 눈으로 무언의 말을 건넸다. '나는 틀렸어.. 먼저들 가..'
사실 꼭 그날 해야만 하는 업무도 아니었고, 그렇다한들 더 일찍 줬어도 되는 것을 꼭 퇴근시간이 다가올 때 전달하는 그에게 화가 났지만 4개월 차 신입인 내겐 그럴 배짱도 깡도 없었다.
그는 내게 왜 그러는 걸까.
1) 본인은 퇴근 못 하는데 내가 먼저 퇴근하는 건 베알이 꼬인다. (=그냥 내가 싫다.)
2) 같이 해야 할 일인데 본인도 팀장에게 방금 전 일을 받았다.
내 결론은 1번.
2번이었으면 내게 조금의 설명은 해줄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 일을 들여다보면 팀장이 줄만한 일들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내게 생겨난 변화는 오.기.
어딜 가나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 1명쯤은 있을 거고 굳이 그 생각을 돌릴 마음도 없었기에 그를 향한 내 마음은 그저 오기였다.
오기가 생기니 속도가 더 빨라졌다.
9시가 넘어야 끝나던 그가 준 일을 8시면 끝내게 됐고 웃으며 더 줄 일 없냐고 묻는 여유도 생겼다.
아이패드 건다!
이런 내 오기가 제대로 발휘된 일이 있었다.
담당 반 학생들의 재등록률 00%를 넘기면 팀장님이 아이패드를 주겠다는 공약을 거신 것.
평소의 나였으면 욕심을 부리지 않았을 테지만, B와 대결(?)처럼 느껴져 아드레날린이 샘솟았다. B에 대한 설움과 복수의 마음을 담아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해가며 담당 반의 학생 한 명 한 명 상담을 하며 그들의 다음 플랜을 결제로 만들었다. 결과는 아이패드 이즈 마인!
원래 내 성격은 '1등을 못했네. 다음엔 꼭 1등 해야지!'가 아닌 '2등이나 했네 장하다!'라고 생각하는 타입이라 어렸을 적엔 욕심이 없다고 엄마에게 항상 꾸중을 들었었다. 그런 나를 변화시킨 게 오기라니. 별 것 아닌 듯한 그 작은 마음이 내 동기부여 버튼일 줄이야.
9년차인 지금의 나의 원동력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을 받을 때도, 하루아침에 직무를 바꾸는 인사이동이 나도, 내 잘못이 아닌 일로 책임을 질 때도. '오기'가 생기니 오히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