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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기영어 Jan 18. 2020

이름을 물어본다는 건.

나를 소개한다는 건.

독일에서 수업을 들은 지 4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다만, 수업을 아무리 같이 듣는 학우일지라도 그들에게 있어 나는, 나에게 있어 그들은 그저 평면적인 이미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같은 수업을 들으며 몇 가지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뿐 그들과 나의 관계는 아무런 연결지점이 없다.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이름도 모를뿐더러 국적도 모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남이다. 그래 확실히 예상하건대 8개월 뒤 한국에 돌아가면 그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흐릿한 이미지 배경일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나에게 있어서 살아있다 할 수 있을까? 결국에 흐릿한 기억의 한편을 차지하고 평생 다시 만나지도 않을 것인데. 내가 이 학우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그저 목소리와 외모 말고는 무엇이 있을까?     


그러다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한주에 수업을 2개씩이나 같이 듣는 학우가 있다.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살짝 곱슬머리에 장발과 파란 눈을 가지고 있다. 목소리가 많이 잠겨 있는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여학우다. 우연히 쉬는 시간에 과방에 만났고 수업에서 다시 만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수업이 끝나자마자 과방 시간과 그녀의 이름을 묻고, 나를 소개했다. 그리고 대화는 이어져 갔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언제까지 독일에 있을 것이며 사소한 대화가 이어져 갔다. 4개월이나 수업을 같이 듣던 학우의 이름과 사는 곳 알게 되었고 인스타를 교환했다. 그 친구는 친절하게 과방 이용시간과 스터디룸을 예약하는 방법까지 알려 주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단짝 친구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버스를 같이 기다리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평범한 하루를 마치며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 하루를 되돌아보니. 평범한 하루가 아니었다. 수업 내내 그저 이미지에 흐릿한 이미지에 불과했던 그 두 인물은 나의 기억에 굳건하게 자리 잡았고 다음 수업 또 만날 거라 기대하게 되었다.      


결국, 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에서 시작해 이제는 그 학우들을 칭하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이제 서로 공유된 경험과 기억들을 쌓게 될 것이다. 이제 그들은 흐릿한 이미지가 아니라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 되었다. 나 또한 그들에게 있어 미미한 이미지로 기억되지 않는다. 결국,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고 나를 소개한다는 것은 흐릿하기만 한 서로의 잔상을 깨버리고 나의 존재를, 너의 존재를 서로 각인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더욱더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고 나를 소개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성을 떠나, 매력적이고 호감이 절로 가는 인물을 만났음에도 그저 서로에게 껍데기로 남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즉 기억,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고 나를 소개하는 것은 신비로우며 내가 존재하고 네가 존재하는 시작이 된다.      

양.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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