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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기영어 Jan 29. 2020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

괴물의 입속으로. 

어렸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을 떠올려 본다면 단연코 귀신이었다. 영화에서 본 괴물과 한이 서린 귀신들의 모습이 어두운 밤이 되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특히나 할머니 댁에 화장실을 집 밖에 위치했기에 밤이 되면 누나나, 동생에게 부탁을 하고 같이 있어주기를 간청했다. 어찌나 칠흑 같은 어둠이 무서운지. 그저 어린 시절의 본능이었다, 어두운 곳은 가지 말아야 한다는.


하지만 이제와 더 이상 어두운 밤이 무섭지 않다. 아마 중, 고등학교 시절 어두운 저녁 길을 혼자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두운 밤이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이다. 점차 점차 학교가 늦게 끝나기 시작하며 어둠이 익숙해지고 결국 시간이 흘러 대학에 와서는 어두운 밤은 오히려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어찌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던 그 어두운 밤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 준 덕일까? 하지만 감사하기 이전에 이제 새롭게 무서운 것들이 생겨났다.  


자의식이 커져 감에 따라. 새롭게 두려운 것들이 생겨났다. 오히려 사회와 속에서 나 자신의 존재를 형성에 감에 따라 각자 개인들이 대면해야 할 문제들이 속수무책으로 커져 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문제들이 있는데. 대인관계, 학업, 미래,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누구인들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겠지만 관심에 가는 이성이 생기면 거절당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대학에서는 학점이 나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나의 모습 등 두려워해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괴물들의 입속으로 자진해서 뛰어들어야 한다. 


심리학에서 PTSD(post trauma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 하여 강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개인은 심적으로 강한 스트레스에 고통받는다. 원인과 증상은 다양한다. 그리고 이를 치료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PE(Prolonged Exposure)라 하여 지속적, 단계적으로 깊게 자리 잡은 공포에 환자를 노출시키는 방법이다. 이 치료 방법은 PTSD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이 갖고 있는 콤플렉스 및 공포를 이겨 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난 글 쓰는 것을 무서워한다. 심지어 옛날에 꽤나 진지한 감정으로 글을 쓰고 타인이 내 글을 보고 비웃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그림을 보여주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타인이 내가 소중하다 생각하는 나의 그림이 무가치하다 질책하는 것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매몰차게 타인들에게 나의 치부를 보여준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에게서 눈을 돌리는 순간 이를 극복할 기회를 잃는다. 때론 가학적으로 이 공포를 이겨내고자 타인에게 매몰찬 비평을 부탁하기도 한다. 이따금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지만 날카로운 비판이자 나의 약점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 공포를 이겨내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릴 적은 이 모든 것들이 까마득한 미래 같았고 어련히 내가 원하는 모습의 어른으로 변해 있으리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 원하는 모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각자에게 덮쳐올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들어야 한다. 각자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조금씩 조금씩 그 공포라는 괴물의 가장 약한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여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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