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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기영어 Jan 19. 2019

비상식적이고, 바보 같고, 멍청하고, 위험한 생각.

왜 사람들은 신태일, 철구에 열광할까? 

장난, 2019, 김응신. 

         비상식 적이고, 바보 같고, 멍청하고, 위험한 생각.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저 멀리서 귀여운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행복해하고 있다. 아주 사악하고 짓궂은 생각이 떠오른다 저 아이스크림을 빼앗는다면. 저 아름답고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가진 저 여성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도망간다면, 노트북으로 열심히 무언가 작업을 하는 저 맞은편 학생의 노트북 전원을 꺼버리고 도망간다면. 헬스장에서 근육질의 남성을 발로 차고 도망간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눈에 아른거린다. 발로 찬 후 목숨을 걸고 전력 질주를 해야 할까. 어처구니없이 가만이 바라봐야 할까? 상상하자 마자 머리가 아찔해 진다. 그리고 웃음이 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근육질의 남성을 발로 차서 도망가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행동이 평화로운 일상에 자극을 준다. 


이 멍청하고 위험한 생각을 나 혼자만 하는 것일까. 어느 누구나 못되고 악독한 짓을 하는 상상을 한다. 다만 실천에 옮기지 않을 뿐이다. 바보 같은 생각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의 신변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뇌의 전두엽은 미래를 내다 볼 줄 알고 상대방의 어떠한 반응을 할지 예견하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상대방과 내가 무의식적으로 합의한 약속 .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 것이며 그 상황과 공간에 맞는 언행을 할 것을 우리는 일생에 거쳐 학습해온다. 


하지만 무의식적 약속이 깨지는 순간, 사회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우리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만약 길을 지나가다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있는 힘껏 차고 도망간다면 어이가 없어 순간 사고가 정지할 것이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위해 몇 초의 시간이 흐를 것이고. 분노가 차오를 것이고 복수심에 상대방을 쫓아갈 것이다. 명확하게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차고 도망간다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을 깬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이 바보 같고 위험한 생각에서 재미를 느낀다. 웃음은 예견되지 못한 곳에서 위험천만한 곳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고상하고 아름답고 안전한 곳에서 진짜 유머를 발견할 수 없는 것처럼. 


특히나 어린 시절의 남성들은 위험한 도전과 바보 같은 장난에 열광한다. 때리고 도망가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고 지우개를 던지고 수업 중 바지를 내리고 어른이 보기에 위험 천만 한 장난이 이들에게는 일상이고 재미이다. 남성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높은 나무위에 올라가는 반의 아이가 멋있어 보이고 구름사다리를 위험천만하게 뛰어 건너가는 아이는 학우들 입에 오르내린다. 아직도 학창시절 어린시절 구름사다리위를 걷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진 고통이 생생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그 친구의 행동은 위험하고 바보 같지만 멋있다. 이렇듯 위험한 일을 감내하는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고 닮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신태일, 철구를 기억해보자. 위험천만하고 허락되지 않는 아주 자극적인 영상들을 업로드하고 보는 이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벽에 간장을 뿌리고, 집안에 불장난하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중요 부위만 가린 채 거리를 쏘다닌다. 이는 자극에 민감한 어린 학생들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해할 필요 없이 행동과 욕으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릇된 용감함은 아이들로 하여금 규칙을 깨고 위험을 감수하는 멋진 일로 해석된다. 그렇기에 이처럼 위험천만한 일이 존경을 받고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들은 앞서 언급한 사회적 약속을 깨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사익을 챙기고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사회적 규칙을 깨는 일은 책임이 뒤따르며 그 경우를 넘어서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학생들은 사회적 합의를 깬 결과가 무엇인지, 그 선을 왜 지켜야 하며, 그 선을 넘었을 때 어떠한 결과가 벌어지는지 마땅히 교육할 필요가 있다.  

(심심치 않게 학생들이 외제 차에 장난했다는 수천만 원을 물어주는 뉴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역설적이게도 위험천만한 행동들과 상상이 악이고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삶이란 예측할 수 없는 곳이며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 내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린아이들처럼 높은 나무 위에 올라서고 그곳에서 뛰어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내고 끈기 있게 큰 도전을 이룬 이들은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감내해 낸다. 그리고 이들은 어른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약속이라는 규칙이 몸에 베여있다. (그렇기에 철구와 신태일이 벌이는 자극적이고 위험한 도전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보았을 때 독립적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은 어쩌면 위험하고 바보 같은 생각일 수 있다. 마치 아이들의 아슬아슬한 장난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바보 같은 생각을 실행했고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렇기에 누구나 생각하는 멍청한 상상이 변화의 씨앗인 것이다.  


 언론에서 혁신가이자 사이꾼 사이를 오고가는 엘론 머스크

결론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위험하고 바보 같은 생각은 도전을 갈구하는 사람의 심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지루한 일상에서 배꼽 빠지게 웃긴 SNL 식의 유머를 찾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비록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이 멍청한 생각 속에 꽤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약속된 맥락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는 것은 남, 여 구분할 것 없이 우리 내면의 용기와 도전 의식을 자극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나무에서 뛰어내리고 장난을 일삼는 아이들을 집안에 가두어 두지 말자. 또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멍청해 보이는 상상을 하는 사람들을 욕하지 말자. 비록 지금은 아이들에게 규칙을 가르치는 우리는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구름사다리를 뛰어다녔던 아이였던 것을 잊지 말자.         


#혁신 #철구 #신태일 #장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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