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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기영어 Feb 22. 2019

신을 믿으시나요? 악마가 있다는 것은 믿습니다.

2019.2.22

Watercolor by George Cruikshank ca. 1830s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때 홍대 3번 출구를 지나가다 두 명의 여성분이 합창단 음악을 하는데 곡을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설문 조사에 도움을 달라 접근했다. 딱 봐도 선교를 하는 모양새였지만 속는 셈 치고 설문에 응하겠다 답했다. 그러니 이내 여성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저희가 간단히 질문만 드릴게요. 저희가 합창단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합창단 아시죠. 합창단? “  여성이 질문했고 “네 알죠” 난 답했다. 


“저희가 노래도 부르고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드릴게요. 나는 무교다 종교인이다.”“무교입니다” “혹시 신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1번 아니다 2번 믿는다”




몇 가지 질문은 받고는 운동 때문에 급히 가야 한다고 말한 뒤 발길을 돌렸다. 역시나 합창 관련된 질문은 속임수였고 목적은 선교하는 데 있어 보였다. 솔직히 오랜만에 재미있는 일이 생겨 신이 난 아이처럼 시간만 더 있었다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더 들어줄 요량이었지만 일이 있어 더 선교 인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으나 세상에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믿는다. 누가 신도 악마의 모습도 본 적이 없으면서 어떻게 악마가 확실히 있냐 물어본다면 난 당당히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 악마는 실존하고 지금 내 눈앞에, 마음속에, 세상에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짧은 일생을 돌이켜 보면 하루의 행복의 순간을 일순간이고 고통은 생생하고 그 실체가 확연히 드러난다.  얇은 종이에 베인 손가락의 상처가 내 모든 하루를 망치듯이 말이다. 




내가 말하는 악마는, 즉 세상의 악의를 생각할 때 난 거대한 재난, 질병, 국가의 부도, 갑작스러운 불행뿐만이 아니다. 건강을 챙기지 않던 나의 안일함은 만성 소화불량으로 돌아왔고 무절제하게 쓰던 핸드폰은 내게 수년에 걸쳐 나를 괴롭혀온 중독이 되어 내 소중한 일상을 빼앗고 있다. 주변인들은 어떠한가? . 미래를 생각지 않은 친구는 목적도 없이 집에서 우울함을 견디고 있고. 친할머니는 허리 통증으로 인해 병원에 신세를 지셨고. 대학 등록 기간을 생각지 못한 한 젊은이는 명문대에 합격하고도 취소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사소하다고 생각하던 작은 안일함과 무절제함으로 인해 우리를 고통의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선명하게 악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내가 하는 행동은 계획하고 미래를 예상하는 것이다. 악마란 내가 무심히 버려 놓은 고지서에서, 무절제하게 방안에 버려 놓은 쓰레기 더미에서, 중요한 약속 기한을 까먹는 내 무심함 속에서 태어나 우리의 삶을 집어 삼키고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신의 존재는 불분명하고 그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것은 아직 모르겠으나.  난 악마를 믿는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미래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가 보인다. 




#악마 #수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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