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일조 봉사
화분의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겨우 내 넓은 홀에서 봄을 기다리기는 했는지 추위를 이겨내고 새싹을 삐죽 내밀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주는 물 조리개의 물이 다 떨어질 즈음 청소하는 보살님이 인사를 건네온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나는 이곳 문화체험관에서 수요일마다 안내 봉사를 한다. 막상 봉사라고 해야 눈에 띄게 어려운 일도 없다. 프로그램을 소개하거나, 체험관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오른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시면 사무실이 있습니다." 또는 홀에 흘린 커피 자국을 마대 걸래로 닦는 일, 열두세 개 되는 화분에 물 주기, 팀장님과 같이 커피 마시며 이런저런 넋두리하기 같은 허드렛일이다.
일주일에 하루를 봉사하는 데 그날이 바로 수요일이다. 수요일 하루는 그래서 평화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조용한 전시관에는 상설전시실에서 일정하게 나오는 음악이 흐르고 그런 가운데 가끔씩 체험관을 찾는 사람들이 와서는 "처음 와봤는데 참 좋네요!" 한 마디 툭 던진다. "네, 커피 한잔 하세요." 하며 반긴다.
나는 이곳 식구들이 나를 법사님이라고 불러 줬으면 한다. 이곳 식구들은 나를 법사님이 아니라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처음 봉사를 시작하겠다고 하던 날부터 여기서 봉사하는 여성분을 보살님이라고 불러주듯이 나는 법사님이라고 불러주면 참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법사님이라고 불러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해도 다들 그냥 편한 대로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봉사를 하겠다고 신청할 때 신분을 확인하면서 밝혀진 과거의 직업이 화근이었다. "아! 교수님이시군요." 하며 이곳 관계자들은 나를 그렇게 부르기로 정한 듯이 모두 그렇게 불렀다. 그들은 아마 내게 최소한의 '리스펙트'라는 걸 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불편함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 사회적 보편성이 나의 특수성을 지워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퇴직을 해서 개털이 된 신분에 과거의 신분을 그대로 붙여 불러주는 게 사회적 도리라고 생각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그냥 법사님이라고 불러주면 좋으련만... 아무튼 결국은 '법사님'은 없고 '교수님'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사실 이곳을 운영하는 주체가 불교재단이다 보니 체험관도 사찰 분위기가 나고 이곳을 운영하는 책임자들도 모두 스님들이다 보니 보살님이니 법사님이니 하는 호칭이 아주 자연스러운 곳이다. 대략 일을 거드는 여성분들을 모두 보살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고, 남자들은 법사님이라고 불러준다. 나만 그 대접을 못 받고 있다. 막상 은퇴하고는 과거의 신분을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아서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에는 "이제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습니다." 하는 정도로 통성명을 한다. 그런데 이곳은 일주일에 하루씩 꼬박 나와 봉사하다 보니 이런 호칭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름이 자리매김할 때 부적절하게 각인되어 과거의 습을 그대로 이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이곳 식구들끼리는 그렇다 해도 이곳 체험관을 찾는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공간 속에서도 갑자기 나를 부를 때 "교수님!"이라고 하면 뭔가 들킨 것 같기도 하고 흰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틈에 누런 옷을 걸치고 있는 느낌이 든다.
타이틀이 중요했던 노동의 시간이 아직도 지속되는 것 같아서 불편한 걸까? 드러내는 걸 힘들어해서 그런 걸까? 겉이 안과 같으면 사회가 재미없을까 봐 그런 걸까? 어떤 이가 말하기를 자존감이 없으면 그런 게 눈에 거슬리고 힘들다고 하던데... 아마 나는 아직 자존감이 부족한가 보다. 책을 좀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법사님이라고 불리건 교수님이라고 불리건 어떤 느낌도 없는 경지에 이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