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의 러브레터는 이렇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광 출신이다. 비디오 가게에서 고전 영화부터 최신 영화까지 하루 종일 보고 토론하던 아르바이트생은 어느덧 본인이 꿈꾸는 영화를 만든다.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하고 만들어내고 싶은 장르나 연출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드는 세상을 모두가 볼 때의 희열, 그렇게 타란티노 감독은 위대해졌다. 그 위대함과 함께 10개의 영화를 만드면 은퇴하고 싶다던 타란티노 감독의 아홉 번째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019)》는 타란티노가 드디어 원하던 캐릭터와 바라는 색깔을 온전히 넣어낼 수 있게 되었다.
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장르 : 드라마, 코미디
개봉 : 2019.09.25.
시간 : 161분
연령제한 : 청소년 관람불가
국내 관객 수 : 281,165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TV 서부극 시리즈의 주연 배우 릭 달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의 스턴트 맨 클리프 부스 (브래드 피트)는 성실한 배우들이지만 할리우드는 더 이상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마빈 슈워즈 (알 파치노)는 더 이상 서부극만 찍지 말고 이탈리아 영화를 찍으라고 조언한다. 절망하던 릭은 우연히 세계에서 주목받는 영화감독인 로만 폴란스키 (라파우 자비에루하)와 그의 아내이자 배우, 샤론 테이트 (마고 로비)가 옆집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릭은 '그래도 할리우드지'하며 잡친 기분이 풀어진다.
클리프는 트레일러에서 애완견인 핏불 브랜디와 함께 산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자신만의 로망을 구축한 삶, 비록 릭의 스턴드 일보다 로드 매니저 일을 더 많이 하지만 그래도 그와 우정을 유지하는 삶을 살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클리프는 아내를 죽였다는 소문이 도는 퇴역 군인이었다. 이 이유로 스턴트맨으로 고용되지 않다가 릭의 부탁으로 간신히 일자리를 얻었지만 브루스 리 (마이크 모)와 싸움이 붙어 차를 부수면서 해고된다.
한편 찰스 맨슨 (데이몬 헤리맨)이 전에 살던 테리를 찾으러 왔다며 샤론과 마주치지만 그냥 돌아간다. 릭은 촬영장에서 극명으로 불리길 바라는 아역배우 미라벨라 랜서 (줄리아 버터스)와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가 갈수록 본인의 가치가 없어져진다고 말하며 울자 미라벨라는 릭을 위로해준다. 여덟 살짜리 배우에게 조언까지 받은 릭은 이후의 촬영장에서 실수를 반복하지만 결국 극복해내며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샤론은 운전하다가 히치하이킹에 응하며 히피와 함께 시내에 도착한다. 소소하게 자신이 나온 영화 《더 레킹 크루》를 보러 온 샤론은 영상에서의 본인의 모습에 흐뭇해한다.
클리프는 릭의 차를 타고 다닐 때마다 마주쳤던 히피 푸시캣 (마가렛 퀼리)이 스판 영화 농장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태워다 주기로 한다. 푸시캣은 클리프에게 친구들을 소개해 주지만 과거 친구였던 스판 (브루스 던)이 히피들에게 해코지당했을 경우를 걱정한 클리프는 스판을 찾는다. 스퀴키 (다코타 패닝)와의 긴장감 넘치는 언쟁 끝에 클리프는 스판을 확인하러 간다. 다행히 잘 있다는, 오히려 화를 내는 스판을 뒤로한 채 떠나려는 클리프를 히피 클렘 (제임스 헤버트)이 붙잡는다. 릭의 차 타이어를 펑크 낸 것. 화가 난 클리프는 스페어타이어로 직접 갈라며 클렘에게 시키지만 클렘이 비웃는다. 더 이상 참지 못한 클리프는 클렘을 흠씬 두들겨 패고 차를 수리하게 만든다. 히피 중 한 명은 텍스 왓슨 (오스틴 버틀러)을 부르지만 이미 클리프가 떠난 뒤였다.
릭은 마빈의 조언대로 이탈리아로 가 큰 성공을 거둔다. 주연 배우로 영화를 네 편을 찍고 이탈리아 아내 프란체스카 카푸치 (로렌자 이조)와 함께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돈을 많이 써버린 탓에 릭은 더 이상 클리프를 고용할 재력이 되지 않았고 할리우드로 돌아오는 그날,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며 이별주를 함께할 생각이었다. 어쩌면 은퇴까지 생각한 릭은 아내보다 조금 먼 클리프와 이별하기 아쉬워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임신한 샤론과 그녀의 친구 제이 세브링도 친구 한 커플과 함께 홈 파티를 보냈다. 그리고 히피들은 '테리가 살던 집의 모두를 죽여라'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차를 타고 할리우드로 온다. 그러다가 마주친 릭. 릭은 시끄럽다며 내쫓았지만 히피들은 거기에 자극받아 'TV에서 살인을 가르친 사람들을 죽이겠다'라는 명분 하에 릭을 집을 급습하려 든다.
LSD에 취한 채 브랜디와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클리프는 히피 삼인방과 마주친다. 결국 1:3의 상황. 하지만 핏불 브랜디의 도움과 클리프의 피지컬로 압살 해버리고 칼로 급습을 당하며 클리프가 쓰러지긴 하지만 다행히 다친 이 없이 히피들을 잡아낸다. 마지막 남은 히피를 릭이 발견하고 TV 서부극 찍던 시절 배웠던 화염방사기로 제압해낸다.
병원에 실려가는 클리프, 그리고 릭은 어수선한 집에 남아 있는데 샤론의 집에 있던 제이가 릭의 안부를 묻는다. 샤론은 릭에게 한 잔 하자고 제안하고 그렇게 연이 닿게 된다. 옛날 옛적에 릭은 그렇게 당대 최고의 배우, 샤론을 알게 된다.
어쩌면 해피엔딩, 이랬다면 좋았지 않았을까라고 타란티노 감독은 말한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최악의 사건이라고 불리는 폴란스키가 살인사건과 찰스 맨슨 패밀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타란티노 감독은 60년대의 할리우드 분위기가 주 내용이라며 줄거리를 한정 짓지 않기를 바랐는데 결과적으로 타란티노는 '샤론 테이트'라는 배우의 애도와 60년대 분위기에 대한 향수를 훌륭하게 담아냈다.
극의 내용과 달리 실제 사건에서는 찰스 맨슨이 '테리의 전 집에 살던 사람들을 몰살해라'라고 말하면서 맨슨 패밀리는 폴란스키가를 침입했고 샤론 테이트를 포함한 5명이 무참히 살해당했다. 테리의 전 집인 이유는 단순 찰스의 음악을 별로라고 테리가 말했기 때문이란다. 특히 샤론은 아이를 가진 상태여서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고 전해졌지만 맨슨 일당은 칼로 난도질해 살해했다. 그리고 잡힌 일당은 '악마의 일이었다'던지, '살인을 알려준 미디어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저질렀다'던지, 말도 안 되는 언변으로 세간에 충격을 주었다.
맨슨 패밀리는 당시 유행했던 덕목인 '사랑'으로 뭉쳐진 사이코 집단이었다. 찰스 맨슨은 자신을 신격화하면서 히피들과 어울려 다녔고 세뇌된 집단을 이용해 범죄, 살인 등을 사주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이마에 하켄크로이츠 문양을 박아 넣은 찰스 맨슨을 응징하는 것으로 60년대를 새롭게 창조했다. 전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2009)》과 맥락을 같이한다. 나치를 응징하는 가상의 집단을 탄생시켜 '절대 악'을 물리치는 카타르시스를, 이번 작품에서는 찰스 맨슨을 응징해 샤론 테이트라는 배우를 지키면서, 끔찍했던 기억을 지워내는 노력을 표현했다.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를 두고 "타란티노가 할리우드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비유했다. '샤론 테이트라는 배우가 얼마나 영화를 소중히 여겼고 관객들이 웃었을 때 비로소 웃을 정도로 정성스러웠으며, 액션 연기를 위해 브루스 리에게 직접 배울 정도로 사랑스러운 배우였는데…'라고 표현하면서 161분 동안 그녀를 향해 애정을 표한다. '나 때는 이 배우가 정말 최고였어'가 샤론 테이트였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옛날 옛날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인 것이다.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폭력적이고 B급 감성은 마지막 엔딩에 묻어난다. 칼 들고 들어온 히피를 보고 깜짝 놀라는 이탈리아 아내의 리액션은 톰과 제리에 나올 법하며 히피들의 머리를 내려 찍는 클리프는 전화기, 액자, 기둥, 테이블 등 위치를 안 가린다. 소리는 '띵띵', '퍽퍽' 등, 자유자재다. 마지막 쿠키 영상에서는 타란티노 감독의 시그니처인 레드 애플 담배와 함께 릭이라는 캐릭터를 솔직 담백하게 드러낸다.
릭과 클리프는 가상의 인물. 그렇지만 샤론 테이트를 구해내고 찰스 맨슨 일당을 징벌한다. 그렇게 지켜낸 게 1960년대의 할리우드. 타란티노는 이렇게 표현한다. '나 이렇게 사랑했지만 아픔이 섞여서 보기 힘들었소. 잠시나마 지워 행복한 미래를 상상해보오'하면서. 어쩌면 우리가 《각시탈 (2012)》의 이강토가 욱일승천기를 칼로 베어버렸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미국인들은 이 영화를 통해 느꼈을 수도 있다. 극 중 분위기는 '응답하라 할리우드'쯤 되지 않았을까. 한국인이어서 100% 알아채고 공감하는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타란티노는 본인이 표현할 수 있는 애정을 100% 이 영화에 담았다. 그의 애정이 듬뿍 담긴 '나 때는'은 해피엔딩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