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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Jul 15. 2020

[엑시트 (2019)]

《EXIT》 한국 재난은 이런 맛이죠.

호프집의 호프는 맥주의 원료 홉 (Hops)에서 유래한 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호프집은 그저 희망 (Hope)이 말로만 떠돌다 갔다 해서 청춘들의 찌든 삶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여기, 청년 백수의 대명사가 등장한다. 옆동네에선 노래도 잘 부르고 수술도 잘하는 의사였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구구절절 탈락사(史)를 말할 법한 백수였다. 이상근 감독의 장편 데뷔작, 《엑시트 (2019)》다.

포스터 ⓒ movie.naver.com

감독 : 이상근

장르 : 액션, 코미디

개봉 : 2019.07.31.

시간 : 103분

연령제한 : 12세 관람가

국내 관객 수 : 9,426,178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 이용남 (조정석)은 아침에 밥 먹고 똥 싸다 잠드는, 백수생활로 쩌든 취준생이다. 자기 관리에는 소홀해도 철봉만은 완벽히 했던 그는 대학시절, 산악 동아리 에이스로 이름 좀 날렸지만 현실은 청년 백수다. 어머니 김현옥 (고두심)의 칠순잔치에서 같은 산악 동아리 출신이자 용남이 고백했었던 정의주 (임윤아)를 만나 떳떳하지 못한 삶을 들키면서 자괴감에 빠져있던 찰나에 웬 가스 테러로 연회장이 위험해진다.

호프집에는 가끔 HOPE도 있다. ⓒ imdb.com

 누나 이정현 (김지영)이 유독가스를 마시면서 호흡 곤란 증세에 이르고 저층이 봉쇄된 상황에서 용남은 헬기 구조를 받기 위해 몸에 줄 하나만을 달고 고층 빌딩들을 오간다. 건물의 옥상 열쇠가 1층에 있어 쓰러져있는 정현을 구해내기 위해선 옥상에 올라가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 용남은 마치 암벽 등반 세트 같은 빌딩을 대학 시절을 상상하며 오른다. 안전장치도 없고 구조물은 부서지기 마련이라 쫄깃쫄깃하게 올라가지만 결국은 문을 열어내면서 옥상에 도착한다.


 하지만 헬기는 어두운 밤하늘에 가려져 용남의 일행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래서 의주는 "타타타-타타-타-타타타"라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의 불빛을 이용해 SOS 신호를 보내본다. 한편 테러범 (박채익)이 '앤서 화학'과 관련됨이 밝혀진다.

한복과 노래방 기계만 보면 테러 상황인 줄 알겠는가. ⓒ movie.naver.com

 계속되는 구조 요청에 헬기가 결국 발견하면서 정현은 구조된다. 하지만 구조 케이블의 무게 제한으로 의주와 용남이 남게 된다. 가스가 차오르면서 위험해진 용남과 의주는 생존할 수 있는 도구를 챙기고 방독면과 방호복을 입고 빠져나가보려 한다. 그러다 도착한 1호선 암길역, 용남은 정화통을 갈아 끼우고 새로운 방호복과 방독면을 챙겨본다. 의주는 가스가 도달하지 못할 곳으로 등반을 시도한다. 역시 산악 동아리 에이스답게 성공한다.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가 아니고 다른 생존자들을 찾기 위해 헤매는 의주와 용남. 아버지 이장수 (박인환)의 타들어가는 속도 모르고 돌아다닌다. 장수는 아들 용남을 찾기 위해 택시를 테러 지역으로 향하게 한다. 의주와 용남은 구조를 기다리던 도중 옥상이 잠겨 학원에 갇힌 아이들을 발견한다. 그렇게 기다리던 헬기가 왔지만 아이들을 위해 건너 빌딩으로 보내게 된다.


 유독가스로 인한 화재 폭발까지 일어난 상황. 아버지 장수는 드론으로 독점 보도하려 했던 언론 덕분에 아들 용남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드론으로 취재된 둘의 좌충우돌 생존기는 전 국민이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기계의 오작동으로 드론은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갖가지 드론들이 다 모이면서 의주와 용남은 여전히 주목받는다.


 드론을 이용해 더 높은 빌딩까지의 줄을 이은 용남.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용남과 의주는 건넌다. 아니, 건너다 만다. 줄이 더 풀리기 전에 의주와 용남은 반동을 이용해 건너려고 줄을 끊지만 결국은 줄이 풀리면서 빌딩 사이로 떨어진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타워 크레인에 도착하고 결국은 헬기에 탑승한다. 구조된 용남과 의주는 서로 '나중'을 약속한다. 


영화 내내 용남 (조정석)은 많이도 뛰고 잡았다. ⓒ movie.naver.com

 코로나 때문에 아침에 울릴 알람만큼이나 많은 재난 알림 문자들이 울리는데 《엑시트 (2019)》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재난 알림 문자는 지진이나 큰 재앙이 있을 때가 아니면 받기 힘든 것들이었는데 적어도 한국 사람이면 한 번쯤은 받아봤을 것이다. 영화에서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것, 그리고 SNS를 통해 알리고 노란 옷을 입은 수뇌부들이 현 상황에 대해 알리는 뉴스 속보, 노래방 기계로 외치는 구조 요청까지, 모두가 한국적이다.


 재난이 일어나도 PC방에 있고 테러가 일어나도 인터넷 방송에서 보여준다. 이마저도 한국적이다. 이런 한국미(美)가 잘 담겨 있어서 그런지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이상근 감독은 첫 장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천만 관객 가까이 모으면서 성공적인 데뷔 신고를 마쳤다. 주연 조정석과 임윤아의 찰떡궁합도 한몫했지만 시나리오 곳곳에 스며든 친근함이 가벼운 재미와 웃음을 선사했다.

《해운대 (2009)》는 오랜 기간 동안 재난 영화의 성공을 대표했다. 지금은 《엑시트 (2019)》가 공식을 새로 쓴 것으로 보인다. ⓒ movie.naver.com

 재난 영화라 함은 기본적으로 땀을 쥐게 하는 연출과 스토리가 기본이었다. 《해운대 (2009)》가 한국 영화계에선 재난 영화의 정답이었다. 천만 관객을 달성하기도 했고 재난에 녹여드는 한국적인 그림은 늘 지역과 상황에 얽매여야만 했다. 이후의 《부산행 (2016)》도 다른 장르의 재난이긴 하지만 나름 공식에 맞춰 잘 녹아내면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나머지는 《해운대 (2009)》에 취한 졸작들이었고 뻔한 레퍼토리에 관객들은 늘 아쉬워했다.


 《엑시트 (2019)》는 장르가 재난임에도 《극한직업 (2019)》이 떠오를 정도로 재미 요소를 많이 섞었다. 적당한 긴장감을 조율했던 덕에 늘 긴장하지 않아도 되었고 신파적으로 울어야 하지도 않았다. 가볍게 재밌어도 좋은 작품을 낳을 수 있구나-를 증명해냈다. 영화가 굳이 여운을 남기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많은 재난이었다.


 캐릭터의 설정들은 한없이 현실적이지만 내용은 빛났다. 배우들의 연기도 한몫했지만 쓸데없이 디테일하고 구질구질했던 설정들 덕택에 끝까지 힘 빼고 웃을 수 있었다. 비록 산악 동아리가 취업의 스펙이 되진 못했어도 생존의 스펙이 되었다. 떵떵거리면서 살지는 못해도 남들 다 죽어갈 때 살 수는 있었다. 주인공 용남이 같은 아무개는 명절 때마다 친척들의 눈칫밥으로 배부를 테지만 가끔 TV에서 나올 이 영화 덕택에 잠시나마 탈출구를 찾지 않을까 싶다. 일상에서의 돌파구는 늘 웃음에서 나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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