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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Feb 12. 2021

[승리호 (2021)]

《Space Sweepers》 그래도 위대한 오프닝쇼

우리에게 "처음"은 늘 씁쓸하게 남아있다. 서투른 그 무언가가 "좋았다" 혹은 "행복했다"라고 남기 위해선 수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개척하는 입장에서 그런 감정은 사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그래 왔던 거 같다. 척박하게 살아왔고 나중에서야 즐기길 바라기 때문에. 영화 《승리호 (2021)》는 박한 평가가 따를 수밖에 없는 한국 SF의 오프닝쇼라고 생각한다.

영화 포스터 ⓒ movie.naver.com

감독 : 조성희

장르 : SF

개봉 : 2021.02.05.

시간 : 136분

연령제한 : 12세 이상 관람가

국내 관객 수 : 넷플릭스 개봉


이후의 내용은 설명에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만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랬다. 비행기가 연착되어서 비행 일정이 급작스럽게 수정되어도 한국인만 따라가면 된다고. 우주도 비슷했다. 적어도 한국인 꽁무니를 쫓아다니면 배는 굶주리지 않았다. 물론 제로섬 게임이면 얘기가 다르다. 악착같이 제 몫을 챙겨가는 한국인의 헝그리 정신을 누가 말리랴. 2092년, 승리호는 이런 한국인의 명성을 여전히 드높이는 우주 쓰레기 처리 비행선이었다. 그 안의 크루들은 역시 한국인, 아니 한국인에 로봇 하나 추가다.

순이와 승리호 크루원들 ⓒ movie.naver.com

 우주에서도 무능한 것을 가장 답답해하는 진정 한국인, 선장 장현숙 (김태리)은 사연 많은 조종사 김태호 (송중기), 어둠의 삶을 살았다고 주장하는 기관사 타이거 박 (진선규), 인간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살상 병기 로봇 업동이 (유해진)과 함께 승리호에서 산다. 그들의 주 업무는 남이 침 발라 놓은 우주 쓰레기 훔쳐가기. 뛰어난 조종 실력과 찰떡같은 조직력으로 소위 '양아치' 짓을 일삼는다. 하지만 버는 돈에 비해 쓰는 돈이 더 많아 늘 돈을 찾아 헤맨다. 사연 가득한 태호는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양딸, 순이 (오지율)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돈 되는 일을 찾는 와중에 한 아이를 발견한다.


 순진한 얼굴의 여성 아이인 꽃님이 (박예린)는 사실 근방을 쉽사리 날려 버리는 폭탄이란 걸 알게 되고 이를 두고 저울질하는 검은 여우단과 강현우 박사 (김무열)를 이용해 몇 푼 챙기려고 한다. 국가나 다름없는 우주개발 기업인 UTS는 꽃님이를 파괴하기 위해 접근했고 태호는 비밀스럽게 꽃님이와 돈을 교환하려고 드는데….


 우주를 주제로 한 한국 영화는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우주가 배경인 영화는 《승리호 (2021)》가 처음이다.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불리는 SF 장르로 쉽게 말하면 말 그대로 우주 모험이다. 휘황찬란한 컴퓨터 그래픽과 상상력이 동반해야 하는 장르였기에 현실적인 한국인 입맛에는 꺼려졌고 자연스레 환영받지 못하는 장르가 되었다. 

새로운 변신이긴 했다. ⓒ movie.naver.com

 때문에 승리호는 순항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극 중 주인공들도 화려할 거만 같았던 우주와 달리 궁핍하고 찌질한 삶을 산다. 과거 잘 나갔던 시절과는 달리 돈 한 푼에 모든 걸 걸고 도박한다. 그럼에도 '정의로움'과 거리 두지 않으니 그 참, 츤데레 한국인 같다. 어색할 거 같은 김태리의 색다른 변신, 오랜만에 모습을 보이는 송중기, 얼굴 없이 로봇 그 자체인 유해진과 엄마 같은 진선규도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보다 보면 몰입이 된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캐릭터의 색채와 별개로 압도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설정은 세세하고 다양하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용 전개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극 중 UTS의 회장, 제임스 설리반 (리처드 크리스핀)은 지구를 비롯한 인간 파괴에 집중하는 빌런인데 어떤 식으로 빌런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한 편이다. 김태호, 장 선장과 연을 맺고 있는 방식도 그리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러닝 타임이 단축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아가씨를 모시다 애기씨였던 김태리는 자연에서의 공생을 마치고 우주에서의 공익을 추구하는 선장이 되었다. ⓒ movie.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에 맞게 컴퓨터 그래픽의 구현이 잘 되어있다. 외국 영화에서만 보던 CG를 한국식으로 잘 맞춘 느낌이다. 라이언이 둥둥 떠다니는 조종석만 보더라도 이 느낌을 잘 알 것이다. 오프 더 레코드지만 제작 자체를 극장에 맞추다 보니 음향에 있어 싱크가 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CG 역시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저 코로나가 야속할 뿐, 제작과 미술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신선하고 첫 발자국으로서 꽤 괜찮았다.


 새로움에 진출했다면 나머지는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신랄한 비판도 때론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큼 큰 응원은 없다. 처음이라고 어색할 수도 있고 별로일 수도 있지만 무채색이었던 한국 영화에 새로운 스펙트럼을 하나 그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일단락, 승리했다.



1. 승리호는 순도 100% 한국 영화다. 다국적, 다문화가 보여도, CG가 상당히 화려해도 모든 게 국산이다.

2. 제작비는 240억, 이를 넷플릭스가 310억에 사들였다. 참고로 손익분기점은 580만 명이었다.

3. 스핀오프 에피소드가 웹툰으로 연재 중이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평행우주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4. 2020년 여름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두 차례 연기되었다가 결국 넷플릭스에게 넘어갔다.

5. 조성희 감독은 《늑대소년 (2012)》 이후 7년 만에 송중기와 합을 맞췄다. 김태리와 유해진은 《1987 (2017)》, 진선규와 김무열은 《개들의 전쟁 (2012)》 이후 오랜만에 재회했다.

업동이가 없었다면 한국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어딜 가나 익살스러움은 한국인의 미덕이다. ⓒ movie.naver.com

6. 업동이 역 유해진은 모션 캡처 연기를 선보였다. 더빙만 한 게 아니고 실제로 "업동이"였다.

7. 나이지리아 피진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와 문화권이 공존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8. 개봉 2일 차 기준 28개국 1위에 오르며 《#살아있다 (2020)》 이후 두 번째로 월드랭킹 1위를 기록한 한국 영화가 되었다.

9. 조성희 감독은 《승리호 (2021)》 시나리오를 10년 전부터 구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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