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Sweepers》 그래도 위대한 오프닝쇼
우리에게 "처음"은 늘 씁쓸하게 남아있다. 서투른 그 무언가가 "좋았다" 혹은 "행복했다"라고 남기 위해선 수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개척하는 입장에서 그런 감정은 사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그래 왔던 거 같다. 척박하게 살아왔고 나중에서야 즐기길 바라기 때문에. 영화 《승리호 (2021)》는 박한 평가가 따를 수밖에 없는 한국 SF의 오프닝쇼라고 생각한다.
감독 : 조성희
장르 : SF
개봉 : 2021.02.05.
시간 : 136분
연령제한 : 12세 이상 관람가
국내 관객 수 : 넷플릭스 개봉
이후의 내용은 설명에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만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랬다. 비행기가 연착되어서 비행 일정이 급작스럽게 수정되어도 한국인만 따라가면 된다고. 우주도 비슷했다. 적어도 한국인 꽁무니를 쫓아다니면 배는 굶주리지 않았다. 물론 제로섬 게임이면 얘기가 다르다. 악착같이 제 몫을 챙겨가는 한국인의 헝그리 정신을 누가 말리랴. 2092년, 승리호는 이런 한국인의 명성을 여전히 드높이는 우주 쓰레기 처리 비행선이었다. 그 안의 크루들은 역시 한국인, 아니 한국인에 로봇 하나 추가다.
우주에서도 무능한 것을 가장 답답해하는 진정 한국인, 선장 장현숙 (김태리)은 사연 많은 조종사 김태호 (송중기), 어둠의 삶을 살았다고 주장하는 기관사 타이거 박 (진선규), 인간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살상 병기 로봇 업동이 (유해진)과 함께 승리호에서 산다. 그들의 주 업무는 남이 침 발라 놓은 우주 쓰레기 훔쳐가기. 뛰어난 조종 실력과 찰떡같은 조직력으로 소위 '양아치' 짓을 일삼는다. 하지만 버는 돈에 비해 쓰는 돈이 더 많아 늘 돈을 찾아 헤맨다. 사연 가득한 태호는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양딸, 순이 (오지율)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돈 되는 일을 찾는 와중에 한 아이를 발견한다.
순진한 얼굴의 여성 아이인 꽃님이 (박예린)는 사실 근방을 쉽사리 날려 버리는 폭탄이란 걸 알게 되고 이를 두고 저울질하는 검은 여우단과 강현우 박사 (김무열)를 이용해 몇 푼 챙기려고 한다. 국가나 다름없는 우주개발 기업인 UTS는 꽃님이를 파괴하기 위해 접근했고 태호는 비밀스럽게 꽃님이와 돈을 교환하려고 드는데….
우주를 주제로 한 한국 영화는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우주가 배경인 영화는 《승리호 (2021)》가 처음이다.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불리는 SF 장르로 쉽게 말하면 말 그대로 우주 모험이다. 휘황찬란한 컴퓨터 그래픽과 상상력이 동반해야 하는 장르였기에 현실적인 한국인 입맛에는 꺼려졌고 자연스레 환영받지 못하는 장르가 되었다.
때문에 승리호는 순항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극 중 주인공들도 화려할 거만 같았던 우주와 달리 궁핍하고 찌질한 삶을 산다. 과거 잘 나갔던 시절과는 달리 돈 한 푼에 모든 걸 걸고 도박한다. 그럼에도 '정의로움'과 거리 두지 않으니 그 참, 츤데레 한국인 같다. 어색할 거 같은 김태리의 색다른 변신, 오랜만에 모습을 보이는 송중기, 얼굴 없이 로봇 그 자체인 유해진과 엄마 같은 진선규도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보다 보면 몰입이 된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캐릭터의 색채와 별개로 압도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설정은 세세하고 다양하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용 전개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극 중 UTS의 회장, 제임스 설리반 (리처드 크리스핀)은 지구를 비롯한 인간 파괴에 집중하는 빌런인데 어떤 식으로 빌런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한 편이다. 김태호, 장 선장과 연을 맺고 있는 방식도 그리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러닝 타임이 단축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에 맞게 컴퓨터 그래픽의 구현이 잘 되어있다. 외국 영화에서만 보던 CG를 한국식으로 잘 맞춘 느낌이다. 라이언이 둥둥 떠다니는 조종석만 보더라도 이 느낌을 잘 알 것이다. 오프 더 레코드지만 제작 자체를 극장에 맞추다 보니 음향에 있어 싱크가 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CG 역시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저 코로나가 야속할 뿐, 제작과 미술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신선하고 첫 발자국으로서 꽤 괜찮았다.
새로움에 진출했다면 나머지는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신랄한 비판도 때론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큼 큰 응원은 없다. 처음이라고 어색할 수도 있고 별로일 수도 있지만 무채색이었던 한국 영화에 새로운 스펙트럼을 하나 그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일단락, 승리했다.
1. 승리호는 순도 100% 한국 영화다. 다국적, 다문화가 보여도, CG가 상당히 화려해도 모든 게 국산이다.
2. 제작비는 240억, 이를 넷플릭스가 310억에 사들였다. 참고로 손익분기점은 580만 명이었다.
3. 스핀오프 에피소드가 웹툰으로 연재 중이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평행우주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4. 2020년 여름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두 차례 연기되었다가 결국 넷플릭스에게 넘어갔다.
5. 조성희 감독은 《늑대소년 (2012)》 이후 7년 만에 송중기와 합을 맞췄다. 김태리와 유해진은 《1987 (2017)》, 진선규와 김무열은 《개들의 전쟁 (2012)》 이후 오랜만에 재회했다.
6. 업동이 역 유해진은 모션 캡처 연기를 선보였다. 더빙만 한 게 아니고 실제로 "업동이"였다.
7. 나이지리아 피진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와 문화권이 공존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8. 개봉 2일 차 기준 28개국 1위에 오르며 《#살아있다 (2020)》 이후 두 번째로 월드랭킹 1위를 기록한 한국 영화가 되었다.
9. 조성희 감독은 《승리호 (2021)》 시나리오를 10년 전부터 구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