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Harry Met Sally...》
이성애자 둘은, 과연, 섹스 없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관계를 칭하느 단어는 많아졌다. 프렌즈 위드 베네핏 (FWB), 섹스 파트너 등, 이제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선정적이고 음험한 단어들로 '관계'를 포장한다. 과거 해리도 샐리를 만날 땐 그랬고, 아마 지금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처음 등장하는 해리와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는 '섹스 없이' 샐리를 만났을 때 더 행복해졌다.
감독 : 롭 라이너
장르 : 코미디, 멜로/로맨스
개봉 : 1989.11.18. 개봉
시간 : 96분
연령제한 : 15세 관람가
국내 관객 수 : 19,627 (16.12.28. 재개봉 기준)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로맨틱 스토리라고 해서 늘 주인공이 로맨틱하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여기 등장한 한 남자, 해리 (빌리 크리스탈)는 여자친구 아만다 (미쉘 니카스트로)의 절친인 샐리 (멕 라이언)의 차를 타고 뉴욕으로 동행하기로 한다. 물고 빨지 못해 안달난 아만다를 뒤로한 채 먼 길을 함께한 샐리에게 스스로가 소크라테스가 되길 자처한다.
"남자랑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남성파 해리는 '섹스'의 존재여부를 따지며 여성파 샐리의 의견에 반대 선언을 했다. "매력적인 여자랑 친구할 남자는 없어요." 넌지시 샐리를 칭찬하며 찔러보지만 "우린 친구가 될 수 없겠네요."라고 하며 샐리는 '관계 불가 선언'을 했다. 별 일 없이 둘은 뉴욕에 도착하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다.
친구는 없다고 했던 그 남자, 남자친구를 만든 샐리를 공항에서 마주하게 된다. 친구는 없고 약혼자는 있었던지 해리는 헬렌 (할리 제인 코작)이라는 여자를 만나 곧 결혼한다고 이야기 한다. 역시 조 (스티븐 포드)를 만나고 있었던 샐리는 만난지 얼마 안되었지만 좋은 관계라는 것을 말해준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해리는 샐리에게 "서로 임자가 있으니 친구로서 밥 먹자"하며 한 번 더 들이대지만 샐리는 "잘 가요"로 이번에도 끊어냈다.
그리고 또 다시 5년 후, 샐리는 조와 헤어졌고 해리는 헬렌과 이혼했다. 샐리가 절친 마리 (캐리 피셔)를 만나 '처녀귀신은 면하자'를 다짐하는 가운데 해리는 절친 제스 (브루노 커비)와 역동적인 미식 축구장에서 구구절절 바람난 아내와의 이혼 스토리를 늘어 놓았다. 그리고 둘은 우연히 서점에서 마주친다. '서로 임자가 있어야만 친구가 된다는' 조건은 오히려 서로 임자를 잃었을 때, 친구가 되었다.
해리는 헬렌이 없어 괴로워 하고 샐리는 조가 없이도 꿋꿋이 잘 살아본다. 이별의 상처를 서로 보듬아주던 와중에 서로 친구 그 이상의 관계처럼 친해진다. 이를테면 '가짜 오르가즘 연기'를 보여준다던가, 밤늦게까지 통화한다던가,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에 애인이 없으면 서로가 파트너가 되주자고 약속하는 것과 같이 연인이 된 듯한 진득한 우정을 나눴다.
서로의 절친인 마리와 제스를 서로에게 소개해봤지만 오히려 그 둘이 엮이며 심지어 결혼까지 한다. 결혼 선물을 고르던 중 헬렌과 그의 이혼메이커, 헬렌의 현 연인인 아이라 (케빈 루니)를 만난다. 해리는 이성을 놓지만 이를 샐리가 잡아준다. 이후 서로에게도 연하의 애인들이 생기지만 오히려 서로가 신경 쓰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다.
그러던 어느날, 샐리는 전 애인이었던 조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밤중에 해리를 찾는다. 한걸음에 달려간 해리는 조를 완전히 잊지 못했다고 말하며 우는 샐리를 달래준다. 달래주던 그 찰나, 서로의 입술은 첫 인사를 나누고 그간 찡했던 감정은 처음 만났던 그 주제로 향했다.
핑계는 늘 다양하지만 결국은 '실수'라고 말하곤 한다. 사랑을 나눴던 그날 밤은 서로를 어색하게 만들었고 '실수'의 포인트를 되짚으며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다. 샐리는 해리를 피했고 해리는 대답 없는 전화기를 붙잡고 음성사서함에 감정을 저축했다. 해리는 원망보다 사랑이란 이자가 쌓이게 했다.
서로 연말이 되었을 때 파트너가 없으면 만나자는 그 말, 해리는 소중했고 샐리는 '시간 때우기용 여자'가 되기 싫었다. 해리는 '집콕'했고 샐리는 파티에서 지루한 남자와 함께 시간을 때웠다. 밖에 어슬렁 거리던 해리는 감정의 소용돌이 끝에 샐리가 있는 장소로 뛰어 간다. "사랑해"라는 해리의 말에 "정말 미워, 해리"라고 말하는 샐리. 사랑, 가끔은 말과 행동이 다르기도 하다. 그렇게 싫어하던 해리는 결국 샐리를 평생 웃기는 데 성공한다.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지겹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첫 인상은 결국, 바뀌지 않는 것일까? 재밌는 글을 하나 읽었다. <첫 인상 이후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라는 글이었다. '초두 효과'는 잘 알려졌다시피 "첫 인상이 중요하다"지만 첫 인상 이후, 그 사람에 대한 최신 정보에 따라 호감이 될 수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샐리는 해리가 결혼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 불쾌했던 첫 만남과 달리 새로운 호감이 생겼을 수도 있다. '어? 이 남자, 이런 포용적인 면모도 있구나'하면서 생겼던 호감은 이혼이란 소식을 접한 후 구체적인 동정과 애정으로 발현된다. 반면 샐리에게 처음부터 매력을 느꼈지만 깐깐함이 털털함으로 보였던 '오르가즘 시늉'은 샐리를 평생 가는 친구로 만들었다. 애정과 우정이 흐트러지던 그 순간,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거리를 두게 하거나 어지럽게 했다. 둘 중 하나가 용기를 내야만 했고 용기낸 자는 결국 미인과 함께했다.
영화 내내 부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이혼 스토리 끝에 "당신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죠"라며 계속해서 기억하려는 부부의 이야기처럼 로맨틱함과 현실의 치부를 함께 들어 놓는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자고 했다. 해리는 하루라도 빨리 샐리와 함께 가고 싶어서 그녀를 찾았다. 샐리는 미워하는 당신에게 떡 하나 더 줬다.
옛날 영화여도 설렘은 그대로, 만남은 구려도 사랑은 이어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