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dium》 공포는 불신으로부터
우리에겐 "아는 맛"이 있다. 교육되고 훈련되었던 그 맛들은 평소에 알아채지 못했다가 외국을 갔다던지, 군대를 갔다던지 하는 식으로 회상한다. 때로는 이 입맛이 자연스럽게 바뀌기도 하고 바뀌어야만 하는 상황도 온다. 전자는 새로운 맛을 찾던 잠재적 욕구가 발현된 거고, 후자는 정크 푸드나 불량 식품 등을 피하기 시작할 때다. 영화 랑종 (2021)은 이 두 가지 맛이 모두 섞여 있는, 문제적 작품이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부분이 불량인지를 확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반성의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감독 : 반종 피산다나쿤
장르 : 공포, 스릴러, 드라마
개봉 : 2021. 7. 14.
시간 : 131분
연령제한 : 청소년 관람불가
국내 관객 수 : 624,496명 (7. 20. 기준)
이후의 내용은 설명에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만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신은 신성한 것, 귀신은 요망한 것.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이기 전에 태국의 이산 지역은 모든 것들에게 각자의 혼이 있다고 여긴다. 날 지켜주면 신성한 신, 해하기 시작하면 악령 혹은 귀신이 되는 것이다.
이산 지역의 수호신인 바얀 신은 님 (싸와니 우툼마)을 매개체로 삼는다. 님은 소위 말하는 무당, 태국어로는 랑종 되시겠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바얀 신의 랑종이란 직함은 일찍이 언니 노아 (씨라니 얀키띠칸)에게 찾아왔지만 그를 거부하자 동생 님에게 찾아간 것이다. 그 덕에 이산 주민들은 님을 통해 이유 모를 병도 고치고, 심신의 안정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노아의 딸 밍 (나릴야 군몽콘켓)에게 이유 모를 이상 증세가 발생한다. 노아는 과거 본인에게 왔던 신병이라고 생각하고 딸이 무당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고통이 심해지자 대물림을 허용하고 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세계 각지의 무당을 취재하던 다큐멘터리 촬영 팀은 밍의 신내림 과정을 찍기 위해 밍의 일상을 함께한다.
곡성 (2016)의 나홍진 감독이 기획에 참여한다 해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 랑종은 곡성에서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분리되어 있다. 무당이란 매개체가 진실되냐, 아니냐와 외부인이 선하냐, 아니냐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랑종에서는 전자가 간략하게 생략되는 와중에 후자는 진자 운동을 반복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밍이지만 이를 계속해서 담는 건 다큐멘터리 촬영진이다. 대부분이 밍이 고통스러워하거나 이상 증세를 보일 때까지 방관하고, 어쩌면 애타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뭔가 대단한 프로의식처럼 보이지만 밍이 하혈하는 장면을 몰래 찍는 장면을 기점으로 이들은 악인으로 판정된다. 필요한 순간 개입하지 않고, 불필요할 때 앵글 안에 들어온다. 권선징악의 교훈은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겠다.
반면 무당이란 매개체가 진실되냐, 아니냐를 두고 랑종에서는 아주 간략하게 "모르겠다"라는 답을 내놓는다. 노아는 님에게 은근슬쩍 물어보고 "띠용"할 수 있는 결말을 잔잔하게 생각하면 "모르겠다"라는 답의 스노우볼이나 다름없다. 이는 어쩌면 촬영 팀이 갖고 있던 의문 - 정말 무당이란 존재는 있는가 - 에 대한 해답일 수도 있다. 영화 초반, 촬영 팀이 님에게 던진 질문들은 결말로써 명쾌해진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곡성과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전술했듯이 "아는 맛 공포"로 죄여 오는데 이중 몇 가지는 정크 푸드나 다름없다. 즉, 고쳐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관객을 무섭게 한다기 보단 불쾌하게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는데 그럼에도 아쉬운 몇몇 장면들이 보였다.
일단 모두가 비난하던 선정적인 장면과 반려견을 살해하는 장면은 모두 권선징악이라는 큰 틀에서 행해진, 다시 말해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평가한다. 오빠 마닛 (야사카 차이쏜)의 악한 성적 욕구를 더 폭력적으로 표현했고 개고기를 팔면서 애완견을 기르는 노아의 현생을 비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체적으로 야싼티야 가문의 죄악들을 한 번에 모아 표현한 극단적인 행동들이 밍의 행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불편했던 건 공포를 안겨주기 위해 노력한 장면들이었다. 뻔하디 뻔한 점프 스퀘어는 알면서도 당한다 치지만 끝까지 앵글을 잡으며 깨물리는 카메라맨은 21세기에 맞지 않은 공포였다. 유사한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 <곤지암 (2018)>은 조금 더 자연스럽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랑종에서는 숟가락까지 떠 넘겨주는 공포였다. 안 삼킬 수 있었다는 그 괴리감 때문에 더 불편했다면 반은 성공, 하지만 끝끝내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하면 100%의 실패라고 본다.
랑종은 명확하게 선악이 구별된다. 그리고 선한 인물에게 관객이 의지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스스로를 불신한다. 선한 신을 의심함과 동시에 본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이유 모를 일련의 사건들은 대부분 불신이라는 키워드로써 설명 가능하다. 관객이 의지하는 대상을 잃은 순간부터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 롤러코스터의 내리막처럼 쭉 내려가고 빨려 든다. 이 몰아치는 분위기가 공포이며, 이 공포는 불신으로부터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