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클래식 外

by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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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클래식


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기묘할 정도로 의외의 장소에서 클래식을 접할 수 있다. 지하철 안내음으로 나오는 국악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호텔이나 주차장에서 나오는 클래식은 지나치게 고급스럽다. 나는, 그런 고급스러움에 어울리지 않은 위치에서, 고급스러우려 노력했던 사람으로서, 또 한 번 어울리지도 않은 사랑을 꿈꿨다.


가끔은 내 위치에 어울리는 사람과 사랑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알량한 자존심을 굽힌 지는 오래인데도, 결국 박수도 손바닥 두 개는 필요하지 않는가. 내가 자존심을 굽혔다 한들 나를 바라보는 상대도 그럴 거라는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 한두 달을 헤맸다. 2025년은 벌써부터 헤매기 시작하니,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서른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보다 조건이 먼저 보인다는 말, 믿지 않았고 지금도 그러고 싶지 않다. 이게 나한테만 통용되는 말이 아닌 것인지, 사실은 모두가 그러고 있다는 것도 부정하고 있었다. 마치 왕따인 줄 모르고, 모두를 왕따 하는 기분으로. 나는 남들이 보는 조건으로는 한없이 주차장에 가까웠는데, 나 혼자 고상한 척 클래식을 향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재즈를 좋아한다고 해서, 풀옵션 맥북이라 오백만 원에 가까운 랩탑을 보유한다고 해서, 혀에 버터를 조금 첨가해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주차장’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거 같다. 아, 아직도 나는 사람과 사랑이 너무 어렵다. 언제까지 헤매야 이 풀리지 않은 오답풀이를 즐길 수 있을까. 다가오는 이 한 명 없이도 왜 나는 답 없는 짝사랑을 하는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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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도피하러 왔습니다


가끔 눈이 신음하는 때가 있다. 빛나는 LED 조명에 눈을 혹사시킨 날, 눈알은 꼼꼼하게 아프고 지나치게 지끈거린다. 눈밑이 떨리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는데, 요새는 여진도 심각하다. 그럴 때마다 눈을 감는 걸 택했는데, 오늘은 글로써 도피하고자 한다.


나는 주로 말할 데 없을 때 이곳을 찾는다. 본디 나라는 인간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을 즐겨하지만, 나라는 인간 혐오가 짙어져서 더는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호감을 사고 싶지 않을 때 글을 쓰는 것 같다. 적어도 이 놈의 글은, 나의 밥그릇이면서도 자기혐오의 시발점이고, 동시에 내 유일한 피난처니까.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3월이다. 올해는 그럴싸한 계획도 있었다. 집 앞의 벚꽃이 잠실 뺨치게 예쁜 나머지, 이걸 보여줄 만한 사람을 찾고 싶었고, 새로운 언어를 알차게 배워보고 싶었고, 나를 위한 선물과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물론 해낸 건 단 하나도 없다. 그럴싸한 계획은 대개 그럴싸한 핑계로 이루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한다면 하는 남자’에서 하지 못하는 ‘하남자’가 됐다.


꾸준한 자기혐오가 나를 뒤덮기 전에 운동을 가야지, 오늘은 생각을 비우는 작업을 해야지, 지하철에서 시집을 한 편이라도 더 봐야지, 오늘 먹은 당근 케이크와 커피가 조화로움에 감사해야지, 마루가 보고 싶은데도 울지 않은 나를 칭찬해야지, 오전에 아침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기뻐해야지,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도 좋아는 해야지, 그래야지. 사소한 행복이 일상 곳곳이 스며들 수가 없어서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나는 어제보다 나은지, 아닌지도 모르는 지옥에 살고 있지만, 적어도 죽지 않음에 감사하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와르르 무너졌을 때, 내가 사랑한 것들이 나를 도와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사랑할 여력이 있을 때 사랑해야지. 사랑은 내가 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첨예하면서도 재고가 넘치는 것이니. 통장에 0은 없어도, 마음 한편에 이자처럼 불어난 애정결핍을 이렇게 해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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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건


핸드폰이 잘 울리지 않는다. 정확히는 업무 외적으로는 정말 울리지 않는다. 서울시가 나를 고립 청년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타당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면 메아리가 없다는 건 익히 잘 알고 있으나, 예전부터 나는 말문이 잘 트이지 않아 엄마의 걱정을 샀던 아이다.


그런 내가 말을 하고, 소통하는 직업을 가진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역설적인 모순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이 역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나와 멀어지려 노력했고, 그래서 적당히를 유지하려고 참 많이 노력했다. 그러다 울컥울컥 쏟아지는, 억울함을 빙자한 애정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이어졌고, 책임감을 통감하며 인연의 끈을 끊어내곤 했다.


성당을 갈 때가 됐다. 또 나는 ‘내 탓이오’를 외칠 때가 됐다. 고해성사를 하며 없는 죄까지 탈탈 털어 주님께 고할 때가 됐다. 삐죽거리며 아는 사람들에게 ‘나 힘들다’고 투정 부리지 못할 터이니, 그럴 바엔 낯가리는 사람들에게 대놓고 비참해질 때다. 언제쯤 인간 구실을 할까. 대체 성숙함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 걸까. 반짝거리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왜 아직도 이런 글밖에 쓰지 못하는 걸까.


크게 외면하고 있었다. 뒤통수가 따가울 정도로 시선은 느껴졌는데, 애써 외면했다. 일터의 사람들은 내 인사를 무시하는 경우가 잦다. 그럴 때마다 받던 상처를, 가끔 환하게 응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삼았다. 이렇게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 나를 찾는 외로움과 우울을 크게 외면했다. 나를 찾는 건 그 둘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피하려고 했는데. 지나치게 친해진 나머지 아직도 떼어낼 수 없다. 불안정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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