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수의 절반을 넘기며 外

by 아무개

아홉 수의 절반을 넘기며


예전에는 겁이 많아서, 최근에는 욕심이 많아서, 그래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멘탈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외부 요인이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들어 생각해 보면 다 부질없는 것들이더라. 겁이 많으면 번개탄을 찾으면 됐고, 욕심이 많으면 한순간 놓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면 됐다. 나는 이제 놓기 쉬운 입장이다.


아홉이란 숫자도 그런 거 같다. 혹자는 불안정한 숫자라 일컫고, 누군가는 다음 단계에 들어서기 전 마지막 시련이라 ‘아홉 수’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인 거 같다. 스물여덟 살의 나에게는 그저 멸칭에 가까웠고, 그럴듯한 핑계였으나, 스물 아홉으로 8개월을 산 지금의 나에겐 이마저도 조상의 지혜였다는 생각이다. 나는 지난 8개월 동안 정말 많이 방황했고, 마치 이십 대 초반처럼 힘들어했다.


감정은 여전히 무뎌지지 않고, 실패와 거절은 마음이 아프다. 어떤 한 회사 한 직군의 인재상이 ‘거절당해도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그 회사에 떨어진 걸 보면 정말 안목이 뛰어난 거 같다. 나는 일희일비했고, 의지할 데가 필요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위치인 것은 동일하다.

바뀌지 않은 게 아홉 수를 넘어섰다고 해서 과연 바뀔까. 사람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데, 내가 아무리 바뀌어도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내가 엉망인 걸 보여주고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있을까. 앞자리가 3이 되면, 그땐 진짜 무너지면 안 될 텐데, 안 무너질 자신이 있을까. 수도 없이 되뇐 질문은 8개월 내내 몸속의 암세포처럼 자라났고, 지금은 그 부작용을 겸허히 다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에는 리셋 문화가 트렌드라고 하더라. 인생에서 리셋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며, 개인 소셜 계정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리셋하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됐다. 일종의 그럴듯한 회피인데, 나는 어쭙잖게 리셋하고 싶지 않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리셋하고 싶다. 아니, 일단은 아홉까지 리셋하고 새로운 열을 찾아야 하는 걸지도.


나이가 먹어갈수록, 그 나이에 원했던 내 모습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내 기대는 허망하고, 현재는 한심하다. 한심한 인생의 정점이 이번 해가 마지막이길 바라는데, 아마 그렇게 안 될 거 같아서 정말 괴롭다.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러기에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용기는 다 썼는데, 용기를 만들던 그 공장은 이미 멈춘 지 오래다. 남은 4개월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이 부끄러운 글을 보고 슬퍼하기보다는 비웃고 싶다. 슬픈 건 이제 힘들고 벅차다.

이 나이 먹고 출가외인이 된 삶에 대해


본디 출가외인(出嫁外人)의 뜻은 “시집 간 딸내미는 남이다”라는 옛말이다. 혐오와 갈라치기의 세대에서는 사용해서는 욕먹기 딱 좋은 말이다. 스물아홉의 미혼 남성에게도 통용되려면 아무래도 ‘시집갈 가(嫁)’ 대신 ‘집 가(家)’를 써서 출가외인(出家外人) 정도로 해야 하겠지.


“집 나가면 남이다”라는 극단적인 언어는 캥거루족처럼 사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엇비슷하게라도 살아야 하는 계기가 생겼다.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인데, 그 정을 모두 덜어내게 만든 건 우리 가족이다. 또 이렇게 말하면 가족들은 서운해하고, 싫어하겠지. 보통 사회에선 가해자의 입장은 잘 듣지 않지만, 이상하게 ‘집안 이야기’라고 하면 가해자의 이야기가 유효한 편이다. 나도 자식 된 도리로서, 원망과 혐오의 자세보다는 존중과 배려의 자세로 모두를 사랑하려 했다. 가족이란 건 바꿀 수 없고, 어떤 식으로든 나와의 연결 고리가 될 테니까.


그래서 내가 바뀌려고 했는데, 평안했던 일상들이 결국엔 내 안일한 판단 하나로 뒤집혔다. 속내를 감추고 ‘윈도우 패밀리’로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연기도 못 하게 생겼다. 내가 그냥 사랑하는 티를 내지 말 걸. 정이 많은데 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라 돈을 쓰려고 했고, 그 돈을 그래도 의미를 담아 사용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도 참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거절은 언제나 힘들다. 난 거절하는 것도 잘 못하지만 거절당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더 못한다. 어리숙해지고, 멍청해지고, 감정적으로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온다.


약점을 보여줘선 안 되겠다. 약점은 결정적일 때 계속 발목을 잡는다. 내 약점은 사랑이었고, 정이었다. 정 없이, 사랑 없이 사람을 대해야만 했는데, 그게 설령 가족이었어도. 착한 건 아니고, 그냥 마음이 약했나 보다. 그 마음도 참 쓸데없고, 쓸모없는데 언제까지 인형처럼 끌어안고만 있을련지.


떠돌이 삶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기댈 곳 없는 삶은 별로더라. ‘독고다이’로 살아야지,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했잖아. 어차피 내 주변엔 누가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없었잖아. 근데 왜 아직도 기댈 곳을 찾고 있는 걸까.

시간 부자, 돈 거지


입사 후 3년 넘게 ‘시간 거지, 돈 거지’ 정도로 살다가 이십 대에 처음으로 시간 부자가 됐다. 기존에 다니던 회사에서 전업 계약을 프리랜서로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업무량과 급여를 줄이고 시간을 더 얻게 됐다. 보통 이 시기에 과감하게 시도하기 어려운 결정인데, 더는 계속하다가는 제갈량의 사인처럼 과로사할 거 같아서 과감해지기로 했다.


시간이 많아진다고 해서 내 일상이 크게 바뀌는 건 아니다. 놀 때 놀았어야 했는데,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었던 터라 어떻게 놀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항상 혼자 노는 게 익숙했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혼자 놀 수 있는 게 많지가 않다. 그렇다고 반골 기질의 내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은 이틀 치 몸살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바쁜 게 익숙해서 한가할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업무와 약속으로 스케줄이 빡빡했던 삶이 느슨해지니, 치밀어 오르는 건 우울함이다.


약속이 없으니 이제 죽어도 되지 않을까 — 란 생각이 드니, 아무렴 뭐라도 해야겠더라. 원래 죽고 싶단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일수록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나도 일단은 그렇게 믿고 있다. 무얼 해야 내가 행복하더라? 나는 행복한 게 뭔지 슬슬 헷갈린다. 예전엔 행복했었나 싶기도 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이렇게 힘들게 살았는데, 아직도 행복할 줄 모르는 게 내 욕심일까, 아니면 아둔함일까. 이 문단을 쓰는 지금, 50명 정도는 있어 보이는 카페인데도 눈물이 차오르는 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인공눈물 값 당분간은 아꼈다.


인생에 잘한 게 있다면 — 커리어가 그나마 잘났던 거 같으니 그걸 빼고도 — 대체 무엇일까. 그럴듯하게 사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외에 잘한 건 없는 거 같다. 돈도 없고, 가족한테도 어색한 출가외인에, 내 주변인들에 비해 부족한 삶을 여전히 영위 중이다. 요새는 주변 사람들한테 미안하다. 굴을 파는 게 아니다. 그냥 미안한 게 더 심해지기 전에 고백하는 거고, 이제는 내 존재 자체도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생각해 보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게, 내 취향의 노래를 듣는 게,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를 보는 게 행복이었다. 근데 이제는 그 커피값이 나에게 너무 사치인 거 같고, 우울한 노래만 반복해서 듣고 있고, 영화에 집중이 되지 않으니 행복이 사라진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다른 행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데 어디서 행복할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 자체가 실수인 걸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난 그 중요한 걸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보는 거다. 나는 실수였다. 나는 유약하다. 나는 보통 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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