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탱고: 미지의 자신을 발견하는 취미

당신은 정말로 춤과 안 어울리는 사람인가요?

by 박지아
KakaoTalk_20250513_195015276_23.jpg ▲ 땅게라가 신는 힐. 10cm이 평균이다.

(2) 들어가기 전에: 미지의 자신에 대해


먼저 아르헨티나 탱고는 스포츠댄스 탱고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남녀가 몸을 맞대고 고개를 휙휙 돌리면서 추는 박력 넘치는 탱고는 스포츠댄스입니다. 아르헨티나 탱고는 남녀가 어울리며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추는 춤입니다. 반도네온과 바이올린을 주축으로 한 강렬한 아르헨티나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사교를 목적으로 살롱(Salon)에서 주로 춥니다.


아르헨티나 탱고에서는 남성을 땅게로(Tanguero), 여성을 땅게라(Tanguera)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인 사교댄스들이 그렇듯 남자가 리드를 맡습니다.


탱고에는 정해진 특정 동작들이 있고, 남자가 어떤 동작을 하면 여자는 이에 맞춰서 따라갑니다. 그래서 땅게로를 리더, 땅게라를 팔로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여성이 따라가는 역할을 맡는 것은 아닙니다. 장식 동작을 넣어 춤을 화려하게 보이도록 하기도 하고, 남자의 동작을 아름답고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땅게라의 아름다운 발놀림과 찰랑이는 드레스, 그리고 반짝이는 힐이 시선을 사로잡지요.


땅게라들은 10cm이 기본인 높은 힐을 신습니다. 이 위에 서면 자동으로 허벅지와 정강이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가슴과 엉덩이가 부각되며 신체 라인이 선명해집니다. 힐 아래에 있을 때의 저는 2년 가까이 신은 운동화를 아직도 끌고 다니는 30대 후반의 편집자입니다. 하지만 이 굽이 높고 아름다운 힐에 올라탔을 때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변신은 즐거운 일이지요. 우리 안에는 상상도 못 했던 모습의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열정적인 사람? 차가운 사람? 활동적인 사람? 아니면 게으른 사람?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수수한 사람? 탱고를 접하기 전의 저는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특정지어 상상하곤 했습니다. 어떤 틀에 넣어두고 다른 모습을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지요.


10년을 편집자로 산, 책상 앞에 붙어 있는 안경 낀 여자.


여중, 여고 내내 눈에 띄지 않는 학생. MBTI는 INTP, 내성적이고, 공상 많고,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도, 꾸미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저는 그냥 평범하고 수더분한 30대 여성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밤에 드레스를 입고 힐을 신고, 향수를 뿌리고, 춤을 추러 나간다고요?


스스로도 할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저런 건 못해. 저런 건 할 수 있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야."

"천박해. 남녀가 저렇게 붙어서 춤 추는 건 이상하잖아."

"부끄러움이 많아서 못 해. 난 몸치야."


그러나, 사실 이 모든 내면의 소리는 진심이 아니라 핑계였습니다. 나도 저 영상에 나오는 여자처럼 예쁜 드레스를 입고 멋지게 춤을 추고 싶은데, 나도 노래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 그런 욕망들을 꾹 참으며 스스로를 모진 말로 다스리고 있었지요.


그러나 제 안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KakaoTalk_20250513_195015276_10.jpg ▲ 29살 때, 이런 몸매의 시절도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썼듯이 저는 29살 때 처음으로 탱고를 접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탈출구 같았지요. '나는 못해'라는 핑계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어요.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힘으로 삼기 위해 탱고를 췄습니다. 그러나 오래 하지는 못했어요. 당시 제 월급으로는 수강료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출판사를 그만 둔 저는 웹소설 작가로 잠깐 생활했는데, 간신히 먹고 살 정도만 벌었습니다. 당연히 생활이 유지될 리가 없어서, 작가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요. 이후에는 다시 취직에 성공해서 생업에만 집중했습니다. 그저 일-집-일-집이 일상이었죠. 그렇게 탱고는 완전히 잊혀지는 듯했습니다.


탱고를 다시 만난 건, 37살 때였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책만 보다 보니 찐 걸까요? 스트레스 탓일까요? 몸무게가 70kg을 넘어가고 있었죠. 뭔가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헬스는 재미가 없고, 필라테스는 자신이 없고, 음악을 들으면서 신나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을까 하다가 20대의 마지막에 즐겼던 탱고를 생각해 낸 겁니다. 왜냐하면 탱고를 한참 추던 29살 때가 제 몸매의 최전성기였기 때문이죠. 이제 30대 후반이 되어 가슴 아래에서부터 시작해서 불룩 솟아오른 배를 보며 한숨을 쉬던 저는,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나이가 37이나 되어서 춤을 추겠다고?"

"나 그때 몸매도 아니고, 드레스도 못 입는데, 내가 다시 할 수 있겠어?"

"괜히 돈만 날리면 어쩌지?"

"난 이제 낯선 사람들 못 만나겠어. 너무 피곤해."


자신이 없더군요. 그러나 한번 탱고 생각이 나자, 그 시절 추억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더군요. 잘 닦여서 반짝이는 플로어, 와인 향기, 우아한 황금색 조명, 여자들의 따각거리는 힐 소리와 남자들의 구둣굽 소리. 강렬한 탱고 음악과 함께 돌고 도는 사람들.


결국 유혹이, 욕망이, 매혹이 저를 이긴 겁니다.

"다시 탱고를 하리라!"


당시 저는 구로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칼퇴가 보장되는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퇴근하면 곧장 홍대로 달려갔습니다. 탱고 아카데미에 도착하면 운동화와 청바지를 벗고,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았습니다. 대신 얇고 몸에 착 붙는 스커트를 입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플로어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홀로 Ocho Atras!*

(*허리를 비트는 동작)


결론적으로, 당시 70kg이었던 저는 6개월 만에 10kg을 빼고 다시 드레스를 입을 수 있게 됐습니다.

힘 하나 안 들이고 즐겁게 살을 뺐으니, 굉장한 이득이었지요.

그러나 다이어트를 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저는 29살 시절의 자신감을 되찾았고, 다시 꾸미기 시작했으며, 낯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멈춰 있고 굳어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그런 느낌이 드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용기를 내서, 내 안에 있는 미지의 자신을 찾아 내는 일.

어쩌면 이건 숨겨진 보물상자를 꺼내는 일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탱고 강사라는 꿈이 너무 허황되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제가 이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지요! 저는 애초에 춤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몸을 쓰는 일을 잘 하지도 못하니까요.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제가 보게 되는 것들, 얻게 되는 것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난 이야기들을 이곳에서 나누고 싶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그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저도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탱고가 선사하는 모든 매혹적인 선물들과 함께 저도 독자님들도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란 사실이지요.


다음 화부터는 탱고를 시작하는 첫걸음부터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KakaoTalk_20250513_195015276_13.jpg ▲ 여성끼리 추는 경우는 없지만, 이날은 이벤트로 두 분이 추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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