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퇴사한 백수의 하루

시간은 잘 흐르기만 하더라.

by 서향

벌써 백수가 된 지 2달이 넘었다. 너무 힘들어서 회사에 사표를 던질 때만 해도 뭔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한 일이 없다. 그래서 한번 백수가 된 나의 하루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오전 7시 기상

어젯밤에는 10시 정도부터 살짝 졸리기 시작해서 11시에 잠에 들었다. 그랬더니 알람 없이도 잠이 그냥 깬다. 회사에 다닐 때는 7시에 겨우겨우 일어났었는데, 백수가 되니 같은 시간이라도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 화장실에 갔다가 체중계에 올라가 본다. 회사에서 찐 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제는 정말 다이어트해야지.


-오전 7시 40분 Power English

영어 공부는 왜 해도 해도 끝이 없을까. 영어를 사용하는 직장에 다녀본 적도 있고, 이전에 다녔던 회사도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있어서 영어를 은근히 많이 쓰는 환경이었는데도, 여전히 영어는 어렵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어서 처음에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20분 수업이 짧으면서 길게 느껴진다. 방송 후 확인 문제를 풀면서, 그래도 영어를 못하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된다.


- 오전 11시 늦은 아침 겸 점심

영어 공부도 하고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적기도 하고, 부지런히 집안을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파진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먹은 것 블랙커피 한 잔뿐이다. 퇴사하면 집에서 멋지게 밥을 차려 먹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장고 털이범이다. '오늘은 양배추가 있군. 양배추 참치 덮밥을 먹어야겠다.' 이런 식으로 냉장고를 열고 식단을 생각하는 게 전부지만, 그래도 스스로 요리를 해 먹는 재미를 알고 있어서 배달은 잘 시키지 않는다.


- 오후 3시 공부(?)

점심도 먹었고, 조금 쉬기도 했더니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그래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책장을 보니, 그동안 공부하겠다고 사 온 책들이 정말 많다. 영어, 중국어, 한자, 한국사 등등. 하고 싶은 공부가 많았지만, 회사 다닐 때는 못 했었지. 하지만 일단 계획부터 세우고... 이거 언제 다 하지? 백수니까 언젠가는 다 하겠지.


- 오후 7시 저녁

점심 먹고 뭘 했다고 배가 고픈 거지? 그래도 지금 먹어야 이따가 야식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요즘 밥 친구는 '터무니없는 스킬로 이세계 방랑'이라는 애니. 내용이 복잡하거나 진중하지 않아서 밥 먹으면서 가볍게 보기 좋은데, 재미가 있어서 밥을 먹고 나서도 한 편 정도를 더 보게 된다.


-오후 10시 운동 및 취침 준비

저녁 이후에도 여전히 부엌 정리, 그리고 부른 배를 움켜잡고 소화를 시키겠다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고,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유튜브를 켜고 운동 몇 가지를 하면, 30~40분이 지나간다. 땀도 흘렸으니 이제 샤워하고 자야지. 자기 전에는 항상 책을 보려고 하지만, 결국은 유튜브만 보다가 잠에 들게 된다.




위에 적은 하루는 집에서 그냥 빈둥거리는 날이다. 그런데 백수가 되니 생각보다 이런 날이 많지 않았다. 내 경우는 이전 회사에서 받은 업무(시급)를 처리해야 해서, 집에 있는 시간에는 3~4시간 정도 업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백수가 되어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졸리는 시간에 잠을 자고,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보통 10~11시 사이에 잠을 자고, 오전 7시 정도에 일어난다. 이렇게 적으면 사실 회사 다닐 때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확실히 수면의 질이 다르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하루 종일 긴장의 연속에다 집에 오면 지쳐 버렸다. 게다가 이 회사만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다양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피곤한 상태에서도 억지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되면 뇌가 제대로 쉬지 못하고, 피곤함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잠에 들게 되는데, 다음날에도 출근을 위해 억지로 일어나니까 자도 자도 피곤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쉬어 준 상태에서 잠이 드니, 자고 일어나면 상쾌함까지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좋게만 보이는 백수 생활이지만, 그래도 걱정은 많다. 백수의 현실적인 걱정은 다음 기회를 빌려서 적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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