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제일 처음 한 일은?

회사를 떠나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서.

by 서향

회사를 다니며 힘든 일이 많았기 때문에, 퇴사를 생각한 시간은 꽤 길었다. 하지만 퇴사를 하더라도 ‘내 일을 한다거나 쉬어본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퇴사를 하더라도 새로운 회사이 결정된 후라고 생각했었는데, 깡퇴사를 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퇴사일이 정해진 이후에는 퇴사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매일같이 고민했다. 생각해보면 회사를 떠나 스스로 하루를 온전히 채운 경험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뭘 하고 싶지?’
그 질문에 답해보려고 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10km 마라톤 도전

빨강머리 앤 또는 해리 포터 전권 읽기

내 이름으로 된 번역본 자가 출판


하지만 리스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했다. 10km 마라톤은 그냥 요즘 러닝이 유행이니 해볼까 싶었던 것이었고, 시리즈 독파도 시간이 많아지니 그동안 하지 못했던 독서를 무게감 있게 해 보자는 정도였다. 그리고 번역본 출판 역시 새로운 돈벌이로서의 가능성으로 보고자 한 것이었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생활이 이렇게 나를 단순하게 만들어 버렸나 싶었다. 원래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막상 내 스스로 24시간의 방향을 정하려고 하니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우울해졌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해보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수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대학교 때부터 배우고 싶어 책도 사두었지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없어 미뤄두었던 바로 그 ‘수어’.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검색을 시작했다. 복지관이나 문화센터에 수업이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시에서 진행하는 ‘수어 교실’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수업 신청이 바로 다음 날이어서, 시간을 맞춰서 등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확인해 봤더니 초급과정은 이미 마감이었다. 수어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조금 놀랐다.


수어 수업은 정말 재미있었다. 돈 벌이와도 관련이 없고, 당장의 진로와도 관련이 없는 공부였다. 정말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투자하는 시간들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직접 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 때문에 중반 이후 수업을 거의 듣지 못했고, 그 다음 달 신청도 놓쳐 지금은 수어 공부가 멈춘 상태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다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떠밀려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 즐거웠던 경험은 내 안에 남아 있다. 나는 언제라도 다시 내 스스로를 위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고, 퇴사를 하고 아직까지는 다른 곳에 매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조만간 그런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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