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인 사람들이 모인 곳
퇴사를 한 뒤에도 전 회사의 업무를 프리랜서로 받아서 하고 있다. 아마 다음 달쯤이면 큰 건들은 마무리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일정이 빠듯해 미리 정해 두었던 마감일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미리 양해를 구하려고 했다.
사실 마감일은 가볍게 정해진 것이었고, 조금 조정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길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원칙적으로는 마감일 변경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충분히 조율 가능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의외로 단호했다. “연내에는 이 업무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시간을 쪼개고, 개인 시간을 줄여서 일해 보려고 계산해 봐도 연내 마무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프리랜서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답변을 했다. “물리적으로 연내에는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만약 내부에서 꼭 연내에 끝내야 한다면, 다른 분께 업무를 맡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 회사에 대한 미련이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일의 양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오히려 그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거의 실시간으로 돌아온 답변은 “그건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같은 기간 동안 비슷한 업무를 충분히 해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지금은 저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 직원으로 일할 때와는 상황이 달라요.”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소통하던 담당자의 상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향 씨가 이해해 주세요. 그 담당자가 회사를 처음 다니는 친구라서 잘 몰라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솔직히 마음 한켠이 묘했다. 그 담당자에게 그 회사가 ‘첫 회사’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벌써 4년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처음 다녀서 잘 모른다’는 말로 모든 상황이 설명되는 게 맞을까.
상사가 4년차 직원을 두둔하며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뒤집어 보면 지난 4년 동안 회사에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더 나아가 생각하면, 그 말은 상사 스스로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고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회사라면 가르쳐야 할 것들이 있고, 역할과 책임의 구분이 있어야 할 텐데, 그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라는 말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내가 다녔던 회사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꽤 진절머리가 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회사는 늘 그런 방식으로 굴러갔다. 새로운 직원이 들어와도 회사에 대해, 업무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시간은 없었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들은 어떤 형태로든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었다. 심지어 전화 받는 법까지 교육을 했고, 내가 직접 그 교육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기본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면 그 회사는 ‘직원 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입사 후 약 3개월 동안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허용했다. 과제 하나를 던져주고는, 어떻게 하든 “다 맞다”고 했다. 그러다 3개월이 지나면 태도가 돌변했다. 그때부터는 “다 틀렸다”는 식이었다. 새로운 직원들은 점점 혼란스러워했고, 어떤 이들은 대표나 상사에게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순응했고, 의욕 없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대표들은 “쟤는 일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직원들은 하나둘 퇴사했고, 대표들은 미련 없이 “그래, 가라”라고 보냈다.
3년 이상 남아 있는 직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직을 하고 싶어도 뚜렷한 커리어가 없어서 그냥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불평불만은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원래 그런 회사니까”라며 모든 걸 넘기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대표들이 그들을 특별히 아끼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회사를 처음 다녀서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평가한다.
사실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따로 있다. 새로운 직원이 입사하면 일주일 정도만이라도 회사에 대해, 자신의 역할에 대해, 함께 일할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와 기준 정도만 알려주면 된다. 하지만 그 회사의 대표들은 그럴 힘이 없다고 했다. 그 대표들은 회사 생활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다가 어쩌다 회사를 차렸다고 들었다. 그러니 직원 교육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른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막연히 느끼고는 있었지만, 회사를 떠나 프리랜서로 객관적인 위치에서 다시 경험해 보니 그곳이 얼마나 이상한 구조였는지가 더 선명해졌다. 퇴사를 했는데도, 여전히 직원이었던 시절의 기준으로 나를 대하는 이 상황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될지, 내가 회사를 차리게 될지, 아니면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다시 ‘회사’라는 틀 안에 들어가게 된다면, 최소한 사람을 키우는 법을 아는 곳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면, 적어도 ‘처음이라서’라는 말로 모든 걸 덮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