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좋아하는 아이돌의 팬미팅을 다녀왔다. 연말에 대형 가수들의 콘서트나 팬미팅이 많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팀이다. 그리고 소속사와의 계약도 이미 해지되어 멤버들이 각자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룹이다. 계약이 끝난 뒤로 완전체 활동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지만, 그래도 멤버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오히려 예년보다 더 자주 얼굴을 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최근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몸도 마음도 꽤 지쳐 있는 상태였고, 날씨마저 비가 올 것 같이 흐려서 피로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팬미팅 날은 괜히 아침부터 들뜨고, 옷을 고르는 시간조차 즐거웠을 텐데 그날은 그저 ‘가야 하니까 간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꾸미는 것은 고사하고 대충 골라 입은 청바지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생각보다 빈 좌석이 많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작은 공연장이었고, 멤버는 두 명뿐이었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흔적이 보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팬들과 소통하려 애쓰고, 노래도 불러주었다. 좌석이 사이드 쪽이라 멤버들이 거의 코앞까지 다가오는 순간도 여러 번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이상하게 들뜨지 않았다. 오히려 공연 내내 공허하다는 감정이 더 또렷해졌다.
보통은 공연이 끝나고 나면 기분이 한껏 올라가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그날의 장면을 곱씹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서 혼자 실실 웃기도 하고, 괜히 다음 일정은 언제일까 궁금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 그저 ‘봤다’는 사실만 남아 있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생각해 보면 그다지 좋은 신호가 아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눈 앞에서 봤는데도 무덤덤했다는 건, 나 스스로에게도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분명히 나는 그랬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 계속해서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그랬을까?’
퇴사를 한다고 선언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느덧 네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퇴사를 후회하고 있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 적어도 퇴사 자체를 후회하고 있지는 않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퇴사 이후의 시간을 돌아보면 묘한 허무함이 남아 있다.
퇴사할 당시에는 정말 많은 계획이 있었다.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 지금까지 미뤄왔던 것들을 하나씩 해치우겠다고 다짐했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매주 한 편씩 써야 한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부터 부담으로 다가왔다.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인데,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게 조금 씁쓸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오늘은 뭘 하지?’라는 생각부터 한다. 하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생각만 하다가 하루를 흘려보낸 날도 적지 않았다.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하루가 끝나면 피곤했다. 처음에는 그동안 너무 무리해서 일했으니, 이제야 몸과 마음이 쉬고 싶어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었다.
그런데 팬미팅을 다녀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게 우울의 초기 신호는 아닐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무엇을 봐도, 무엇을 해도 ‘그냥 그렇다’는 상태. 심지어 좋아하는 것을 마주했을 때조차 별다른 감흥이 없다면, 그건 분명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은 단정 짓고 싶지 않다. 괜한 자기 진단일 수도 있고, 잠깐의 정체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의 나는, 내 상태를 모른 척하고 넘어갈 만큼 여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글로 남겨본다. 정리가 안 된 마음을 그대로 적어보면서, 적어도 ‘아무 감정도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쩌면 이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조금 지쳐 있고, 방향을 잃었고, 그래서 잠시 멈춰 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기록.
팬미팅에서 느낀 그 공허함이, 나에게는 그걸 알려주는 계기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