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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Jun 09. 2023

191-200

191

일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육아를 할 때면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다’… 그런 건 분명 아닌데 육퇴 후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이와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것도 좋고, 틈틈이 공부를 하는 것도 좋고 글 쓰는 것도 좋다. 만약 일하는 게 너무 싫었다면 온 세상만사 숨 쉴 곳이 없었을 텐데. 여기저기 숨통 틔이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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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고가의 헤드폰을 갖고 싶다는 중학생의 말을 듣고 꼰대 같지만 설득의 말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다. “아줌마는 **거 쓰는데 그것도 가성비 괜찮아”. 말을 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설득이 될까 싶어서 한 번 던져본 말이었다. “사실 가격이나 성능이 중요하지 않은 건 너도 나도 다 알고 있지. 왠지 그것이 있어야만 또래 집단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알지 알지. 근데 너무 고가다… 어떻게 다른 건 안 되겠니?” 이렇게 말했어야 했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조차도 몇 십 년 전 엄마아빠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아서, 또 그때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왠지 복잡 미묘한 기분이었다. 꼭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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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쓰고 싶은 글 말고 사람들이 원하는 걸 잘 써내는 게 중요해” 왜 이렇게 일이 내 맘대로 안되나 했더니… 해답은 저 말에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남들이 내게 원하는 게 다르다. 그 갭을 채우려면 남들이 원하는 것을 잘 해내어 내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실력을 가져야 한다. 고로 둘 다 준비하고 잘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너무 당연한 일에 조바심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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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흥이 많아서 춤을 잘 추길래 나도 모르게 사람 많은 곳에서 춤춰 보라고 권했다. 비록 다섯 살이지만 아이는 단호히 거부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춤은 집에서만 출 거라고,  다른 곳에서는 부끄럽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주변 어른들이 “너 그거 잘하잖아! 한 번 해봐!” 그러면 그 상황 자체가 굉장히 창피하고 그 말을 한 내 주변 어른이 부끄러웠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반성한다. 아이는 뭘 모르는 존재가 아니다. 다 알고 있고 표현이 어른과 같지 않은 것일 뿐이다. 자꾸만 잊고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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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최선’인 사람은 ‘의식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할 것을 알기에. 이렇게 의식적으로라도 되뇌어야만 조금이라도 그 선하지만 다소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잠시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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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운이 좋았던 게 ‘삶의 의미’까지는 몰라도 ‘그 의미를 채워가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때론 좌절했지만 이 좌절 앞에서 다시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 있었다. “그래서 네 삶의 의미를 채우는 법까지 찾았으면 됐지. 더 바래? 에잇 욕심쟁이얏!” 그렇다. 어렵게 얻은 답을 날려먹으려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이제 나의 꿈은 ‘넥스트 레벨’이 아닌 ‘넥스트 스텝’. 그 의미를 담아 내 삶을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비록 누가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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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몸이 아팠다. 크게 아픈 건 아니었지만 당최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내 마음의 슬픔을 몸이 먼저 알아차린 것. 나는 몰랐고 외면했던 내 마음의 파동을 내 몸이 직접 받아내 안은 것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돼 있고 또 나도 모르게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아 말고도 나를 사랑하는 존재는 내 안에도 있었다. 그들을 통해 위로를 얻고 또 힘을 내게 되었다. 고마워. 내 안의 마음과 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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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 자신에게 실망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내가 얼마나 별로인지 평소에 자꾸만 잊고 있다가 문득 깨달을 때다. 자존감이 바닥이어서가 아니라 진짜 별로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한 자신을 발견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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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외로울 때는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들어 보자.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네가 원하는 걸 나도 원하고 마주 잡은 두 손에 맹세해. 힘을 내봐(그래) 용기를 내 봐. 용-기-르——을 내 봐!‘


200

경험은 거절과 기회라는 가능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렇기에 다소 창피함을 무릅써야 하기도 한다.

시작도, 계속하는 것, 포기하는 것, 안 하는  것까지 누구나 뭐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안의 수치심이 고개를 들어도 눈 질끈 감고 한 번 더, 지금 이 순간에 하는 것. 이번에 성공할지는 모르겠어도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기꺼이 수치심을 무릅쓰는 것. 그것이 경험과 도전(**키 광고 같지만 내 마음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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