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눈을 바라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여기서 바라봤다는 것은 지그시, 그러니까 대화를 하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 의지로 상대방의 의사를 읽기 위하여 또는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 눈을 바라본 적이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어른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의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보며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건 나 자신이 상대방 앞에 바로 설 자신이랄까 내면에 꼿꼿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고 나란 사람이 굉장히 소극적이면서도 때론 공격적이었던 터라 상대방에게 당당하고 열린 마음을 갖고 있지 않기도 해서이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어른이 되고도 남을 나이임에도 스스로 어른이 되지 않은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듯한 태도라고 생각해서 내 안에 콤플렉스로 느껴지게도 했다. 어른이지만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어중간한 어른. 하지만 이런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을 뜯어고치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이도저도 아니고 나 자신조차도 문제로 여긴 이 태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역설적이게도 사람과의 대화에서가 아니라 한 영상을 통해서였다.
이미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마흔 살의 나는 때마침 평생 교육 차원에서 사이버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중 한 수업은 ‘문학을 통한 심리 치유’를 다룬 과목이었고 여러 문학 작품에 대한 공부가 필수였다. 마침 수업에서 거의 부교재처럼 매 번 언급되던 작품이 있었는데, 그건 누구나 읽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이름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빨간 머리 앤>이란 작품이었다. 그리고 나는 소설과 함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는 유독 대화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카메라는 대화하는 두 사람, 그러니까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앤과 사람과의 소통이 서툰 마릴라와의 대화가 특히 많았다. 대화하는 두 사람의 눈언저리를 클로즈업하고 화면이 대화하는 둘 사이를 쉼 없이 오갔다. 그리고 대화에 따라 흔들리는 눈망울과 그 눈을 감싸고 있는 주름진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이 든 사람을, 상대방을 지극히 걱정하는 눈빛을 본 게 참 오랜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딘가 낯설지만 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 오묘하면서도 따뜻하고 친근한 눈빛에 대한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저 눈빛을 본 적이 분명 있다. 있다면 그건 언제였던가.
그들이 모두 마릴라 아줌마처럼 주름진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그동안 이런 따뜻한 눈빛을 많이 받고 살았다. 어쩌면 나를 향해 있었지만 미처 눈치채지 못했고 따뜻하고 사랑이 담겼던 눈빛. 그리고 내게 그 눈빛을 보내줬던 사람들의 얼굴이 한 명씩 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물론 그 눈빛을 가진 이들은 어른만 있는 것은 아니라 어린이도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나를 잘 아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서로를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기도 했고 그래서 결국은 잘 알게 된 사람도 있었다. 그 모든 이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한 마디 덕분에 나는 성장할 수 있었고.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좋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어느새 진심으로 아름다운 그 눈빛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고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는 그 눈빛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
나를 키워준 많은 사랑과 그 사랑을 담은 눈빛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