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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에 '있는' 자서전을 얻기 위해

by 김경민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참 마음 편한 일이다. 그것이 종교가 되어도 좋고, 친구나 가족이어도 좋고, 재력이나 능력이면 더 좋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란 사람은 믿는 구석이 없었다. 종교도 있었지만 신에게 나의 입신양명을 아무리 구걸해도 나의 입신양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력 없이 바란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믿는 구석만 믿고 노력은 등한시하는 것. 그래서 나는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박살 내는 심정으로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그럼에도 시시각각 기운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땐 끙끙 앓는 것보다 주변 사람과 머리를 모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이를 ‘집단지성’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는데 진짜 집단지성이진 않겠지만 이름을 멋있게 붙여주면 정말 ‘집단지성’ 못지않은 통찰력이 삐져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담아서 붙인 것이다. 이 집단지성들의 대화 타임이란 게 별 건 아니고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사이사이에 이루어진다. 메뉴를 고르고 식당까지 가는 길과 메뉴가 나오는 그 10분에서 20분 정도의 짬. 구성원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는 모종의 mc가 되어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다. 진리는 때론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도 발견되기도 하기에.


어느 날 이 집단지성을 팔자타령을 한 명씩 하기 시작했다. ‘내 팔자는 왜 이랬는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답 없는 대화에 갑자기 믿는 구석 하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 은행에서 ‘재미 삼아’ 만든, 우리 같은 집단 지성들은 낚으려는 타로, 운세 앱이었다. 생각보다 적중률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고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알아둔 생시와 생일을 입력해 본다. 역시… 운 없는 놈은 문서에도 나오는구나… 하면 스크롤을 내렸다.


중년에 긴 위기가 오지만 이를 극복하면 후에 자서전에 나올 정도로 성공한다. 자식복이 있어 효심이 극진하고 나중에 부모를 잘 모신다…


없다. 없다. 없다만 보다가 눈에 딱 들어온 한 줄이었다. 인생의 거의 모든 복이 없지만 결국은 소소하게 라마 성공한다!

그것이 내 운명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믿는 구석이 생겼다. 중년의 시작에 있으니 조금만 버텨 이를 통과하면 행복한 말년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우리 딸과 함께


이 앱은 운명만 말해주지 않고 유의점도 말해주었다. 노력해야 합니다!

그건 이미 나도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자서전이 나올 정도로 성공하다는 보장만 있으면 노력에도 신바람이 날 것만 같다.

믿을 구석이라는 건 그렇다.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노력하면 그래도 일정 부분 이룰 수도 있다. 알고는 있었지만 남이 말해주니 내 마음속에 한 번 더 각성이 되는 느낌이다. 게다가 자서전이라니.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동안의 행실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됐다(누군가 이 부분에서 반성하고 있다는 것도 써줬으면).


듣고 싶은 말을 이렇게 해주는 믿는 구석에서 난 노력할 힘을 조금 얻었다. 믿는 구석만 믿고 노력을 안 할 수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하는 쪽을 택했다. 킵고잉, 못 먹어도 go인 게 인생이지만 나는 먹으면서 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노력하기로 다짐한다. 내 팔자에 있는 자서전을 얻기 위해. 언젠가 내 노력이, 기록이, 생각이, 마음이 가치를 얻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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