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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우려고 운동한다

by 김경민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가 있었다. 이 말과 함께 그럼 온 국민이 ‘청춘’이겠네. 하는 우스개 소리도 같이 유행했었다. 농담처럼 한 이 말이 사실은 깊은 함의를 갖고 있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그러고 나서 십몇 년이 흘렀을까. 우연히 인터넷에 도는 밈을 보고 빵 터졌다. 밈의 제목은 “20대에 누워있는 나, 운동하는 48세의 문소리배우” 이에 문소리 배우는 “여러분 많이 누워계세요. 저도 20대 때는 누워있었어요~”라고 응하기도 했다.


그렇다. 와식생활이라면 나도 빠질 수 없는 내추럴 본 와식형 인간이었다. 누워있는 게 제일 좋고 눕는 것이 곧 쉬는 것. 피곤하면 얼른 자자 주의였다. 만병의 근원은 잠이고 잠을 잘 자야 안 아프다는 주의이기도 했다. 청소년기의 방학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잠만 자서 잠다이어트에 성공하기도 했었다. 그 정도로 많이 자고 많이 누워있었다.


더우나 추우나 이불은 필수. 이불속 세상은 바깥 날씨와 상관없이 따뜻하고 포근하다. 게다가 잠까지 잘자면 굳굳. 이런 평화가 깨진 것은 내가 나이를 먹어서도 있지만 출산을 거치면서부터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모른 게 한 가지 있다. 신생아는 잠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잠은 많이 자지만 끊어서 잔다. 그 주기는 생각보다 짧았다. 잠자리 투정도 대단하다. 진자리 마른자리 잘 살펴줘서 쾌적해야만 잠자리에 드신다. 그것도 한 시간짜리. 도저히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에잇 하고 모른 척 깊은 잠을 청하기엔 아이는 너무 연약하고 물렁물렁하고 온 힘을 다해 울어댄다. 그 모습이 너무 불타는 고구마 같기도 하고 머리가 아파서 어떻게든 재워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 년을 보낸 것 같다. 서서히 손목가지가 시큰하기 시작했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의사가 말해주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10개월이 지나면 많이들 병원에 오세요. 그때쯤 되면 아이도 세상에 적응한 뒤라서 엄마의 몸도 아이의 몸도 출산하면서 받은 면역력을 다 소진하는 시기예요.” 너의 임무를 끝냈으니 너의 면역력은 내가 다시 가져가지.라는 것 정도 되는 것이다. 면역력도 체력도 바닥났다.


그전에는 신나게 누워서 놀았다면 이제는 생존하려고 눕게 되었다. 육아 공동체와 육아의 정점에 있는 아이와 함께 삼각형을 이루며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누워서 얘기하고 누워서 책 읽고 누워서 티브이를 봤다. 서서히 아이도 누워서 먹기까지 했다. 어른이 온종일 누워있으니 아이 입장에서도 그게 당연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정도로 누워있는 게 너무 자연스러우니 휴식이었던 잠도 누워있는 것도 더 이상 휴식이 아닌 게 되었다. 몸은 더 무거워지고 게을러졌다. 무릎도 허리도 아프다. 중력을 거스를수록 더 시큰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저기 뒷동산 산책도 에베레스트 등반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되었다. 그렇게 누워 있는데 아이가 말을 했다. “엄마, 우리 산에 가자” @.@ 아이의 말에는 무조건 ‘예스!’를 남발하던 타칭 ‘칭찬봇’, ‘예스봇’인 나인데도 선선히 ‘예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 산에 가자니까. 나 산에 가는 거 좋아해” “아? 그래? 그럼 날 좀 시원해지면 가자”라고 하니 남편이 “오~ 진짜?”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날부터였다. 쿠*으로 스텝퍼(제자리 걷기 운동기구)를 주문하고 일어나자마자 다른 생각이 들기 전에 얼른 튀어나가 한 시간씩 스텝퍼를 밟았다. 그 한 시간 동안 남도 원망해 보고 슬퍼도 해보고 웃기도 해보고 별짓을 다 했던 것 같다. 감정의 파도에 내 다리까지 맡기고 그저 그렇게 움직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운동을 하고 죽을 것 같은 30분쯤 지나면 몸은 엄청 힘든데 마음속 먹구름이 조금씩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매일 아침 ‘아 진짜 하기 싫은데’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운동을 했다. 그래서일까. 그 덕분인지 세네 시간의 출근시간에도 무릎이 덜 아프기 시작했고 슬슬 체력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집에서도 가능하면 눕지 않고 앉아있었다. 그러니 자기 바로 직전에 누운 그 순간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아, 이거지. 이것이 자는 것이지’


어릴 때는 그러니까 청춘 때는 많이 놀아도 많이 움직여도 다음날 근육통처럼 ‘아얏!!!’ 하고 있다 보면 금방 나았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계속 아프고 계속 힘들었다. 청춘 때 누린 그 휴식을 마음껏 느끼려면 이렇게 애써서 움직여줘야 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자칫 청춘의 그들이 보기엔 더 청춘 같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게 다 노력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싶어서 우리 딸이 산에 가자고 할 때 ‘오브코스 와이낫. 렛츠고!’를 선선히 외치기 위해. 그래서 매일 아침 5시 나는 운동하러 일어난다. 다행히 오늘도 성공했다.


그러니 청춘들이여, 지금 마음껏 누리고 많이 누워 있으라. 나중에 흉내 내고 싶어질 때 충분히 기억할 수 있게. 그래 이거지. 이게 잠자는 거지 쿨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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