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 눈깔은 재수가 없어."
그날은 무척이나 더운 여름의 끝자락의 평범한 날 중에 하나였다. 그럴 줄 알았다.
거침없는 화풀이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오손도손 가족끼리 경영하고 그 틈바구니 사이 몇몇 일반인이 택배 속 완충제처럼 섞여있는 좋소라면 누구라도 오히려 하루에 한 번쯤을 들어야만 하루 일과를 제대로 마쳤다 여길 정도로 특별할 것 없는 일과 중 하나. 딱 그 정도의 사건도 아닌 사건. 그래서 조금 충격적인 말이긴 했으나 또 대수롭지 않게 들렸던 말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자리를 함께한 편집팀장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눈에서 무언의 띠용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당연히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에. 나는 점차 현실로 돌아오며 이게 장난이 아닌 걸 깨달았다. 그건 낮고도 조용했지만 백 퍼센트 진심 어린 경멸의 말투, 경멸에 대한 아니 경멸이라 오해한 자격지심의, 또 다른 경멸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말해도 눈치 없는 내가 들어먹지 못하자 작정하고 날린 마지막 경고의 멘트였다. 넌 재수가 없어. 눈깔조차도. 이제 알아듣겠니, 라며.
서울시 마동구 망리단동 한 자리, 그러니까 책 좀 만든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이 동네에서 약 10년의 시간을 책을 만들며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 이 자리, 이 스팟 만큼은 지도앱으로 위도 경도를 찍어 본다 해도 내가 10년 동안 매일 앉았던 자리인 만큼 소유권은 없어도 어쨌든 내 땅! 내 나와바리!라고, 우기고 싶을 만큼 내가 앉아 있던 자리와 그간의 시간을 좋아했던 ‘나’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사실 이런 종류의 말을 처음 들은 건 아니다. 하루 한 번씩, 1년 365일 중 주말 빼고 공휴일 빼고 대략 230일이니, 230번의 재수 없는 말을 들으며 10년을 채웠고 이는 대략 2천 번의 헛소리를 들은 셈이어서 나름의 노하우라면 노하우랄까, ‘화풀이 멘트’에 맷집이 있는 나였지만 이번엔 그 화풀이가 남다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아주 나에게 잘 전달됐다. 아… 재수 좋은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어쩌다 운이 좋아서 어떻게 해서든 굴러온 인생이었는데, 이제 나쁜 말도 아니고 요상한 저주에 가까운 재수 없는 말 하나를 면전에서 듣기까지 했으니 눈깔이건 뭐건 정말 재수가 없긴 없는 거였네. 그의 말처럼.
그런데 눈깔이 재수 없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가 말한 ‘눈깔’의 정확한 의미는 나 홀로 추정할 뿐이었지만 대화의 맥락을 보았을 때 대략 ‘싹싹함’을 말하는 듯했다. “넌 내가 지켜봤는데 내가 그 옆방에 떡하니 있는데도, 있는 걸 알면서도 싹싹하게 인사 한 번을 안 하더라. 그건 너한테 돈을 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눈깔과 예의, 그리고 인사.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이 단어들에 대해 여러 각도로 조합을 해서 생각해 봤다.
’사장인 나한테 인사를 90도로 안 하다니!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이건가? 아니면 ’넌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일을 했어' 일까. 아닛, 그런데…3개월 신입 인턴도 아니고, 10년 넘기 근속하는 동안 그 흔한 지각도, 무단이탈도, 행패도 아니 커다란 실수도 없었다 자부한 나인데. 그가 그렇게 분노하며 나를 싫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매일 피곤에 쩔어 동태눈이었던 내게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게 과연 나의 것이었을까. 썩은 동태 상태라, 너무 까매서 거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었을까.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졌다.
2.
출판계는 대부분의 좋소고, 좋소인들이 그렇듯 나도 경영진 가족들이 집이 아닌 회사에서 각자의 방애 들어가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또 옹기종기 서로를 욕하다가 6시가 되면 누구보다 세상 다정하게 퇴근하는 그런 사람들이 경영을 하는 하루를 보내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10년 동안. 내가 10년 전 처음 입사할 때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지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석양에 노을 지듯 자연스럽게 그 시간 동안 동태눈이 된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썩은 동태눈은 한 건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닌데, 모두가 안 그런데 나 혼자 그런 눈을 한 것도 아니고 모두가 초점 없는 썩은 눈을 하고 있었는데! 게다가 서로 간의 합을 맞춰보는 인턴(?) 기간에 일어난 일이라기엔 지난 10년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아무래도 눈깔 발언 다음에 남긴 그의 말이 실마리가 될 것 같았다.
"김씨 집안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김씨 집안? 내가 어느 집안을 무시하고 어쩔 시구리 할 정도의 사람은 아닌데. 그는 내 피로물질 눈깔에서 김씨 집안, 그러니까 윗분들 일가의 모욕감 내지는 열등감을 느꼈다고 말한 듯했다. 아무래도 의문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3.
아무래도 정신이 혼란해져서 책을 펼쳤다. 나란 사람은 이렇다. 꼭 이런 와중에도 책을 읽는다니… 나 자신이 싫어지려는 순간 들어오는 글귀가 있었다. 두껍기가 웬만한 사전보다 더 두꺼워서 손도 안 댔던 그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이미 읽어본 이들이 말하길 이 책에는 많은 명대사가 있다지만 거기엔 인류의 존재에 대한 자의식 넘치고 허무맹랑하다 못해 이상한 질문에 ‘42’라고 답해주는 생명체 아니 슈퍼컴퓨터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42살이네. 아, 젠장할… 하는 기분에 책을 덮고 다른 책을 열었다. 몇 장 넘기자 또 이 이야기가 나온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는…… 나는 다시 책을 덮었다. 앞으로 욕을 할 일이 있어 숫자를 사용할 때는 18이 아닌 42를 쓰기로 다짐하면서. 아, 사씹-이 같으니…
그런 잡생각을 끝도 없이 이어가다 보니 갑자기 며칠 전 본 티브이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유 퀴즈?
유명 포털사이트 *글의 한국 부사장이었다가 도전을 외치며 미국 현지로 떠났던 그녀, 그래서 누구든 섭외만 오면 달려 나간다던 그 '유퀴즈'에 나왔던 그녀. 그녀가 그 포털사이트에서 소위 ‘짤리고’ 멀티잡 플레이어로 다시 나타나 그 어렵다는 '유퀴즈'에 두 번째로 나온 사연 말이다.
‘아니, 대기업에 들어갔다 나오는 걸로도 유퀴즈에 나오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라며 한 치 앞을 모르고 말을 했었더랬지. 그러나 그게 내가 그런 사람의 하나가 될 줄은 몰랐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글에 다니지 않았기에 유퀴즈에 나갈 수도 없었고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도 이유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 일이 지금도 어딘가에선 줄줄이 일어나고 있을 일이라는 것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상황은 달랐지만 마흔이 넘은 결혼도 안 한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명분도 없이 벼락처럼 떨어져 버린 경력 단절은 나를 그녀와 같이 멀티잡에 매달리게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모르겠다는 것이 아닌 본능처럼 감각으로 먼저 알 수 있었다. 나 자신도 잘 인식할 수 없는 채로. 그리고 사실 이런 결말을 나뿐만 아니라 내 생업의 줄을 잘라버린 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내게 이런 말도 했기 때문에. ”내가 널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말하는 거야. 회사 그만두고 내가 챙겨 주는 일 간간이 하면서 지내~“
그에게 나는 회사에서, 사회에 필요한 한 명의 사람이 아닌, 결혼적령기에 결혼도 안 해서 적당히 부리기 좋고 그래서 집에서 놀면서 우리 회사 일 좀 해 주면 내가 알아서 잘 (저렴하게) 일당 쳐서 챙겨줄 딱 그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 유퀴즈에 나가고 싶어서 해고를 당한 건 아닌데. 아닌가, 유퀴즈에 나갈 정도도 아닌 건가. 그래서 이렇게 쉽게 말 한마디로 아웃이 된 걸까. 아니면 인류의 모든 허무맹랑한 답인 42살이라 그런 건가. 평소엔 각종 스트레스를 해결해 주고 때론 위로까지 해줬던 모든 책과 이야기들조차 뒤집혀버린 환경에선 도통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무엇을 보고 무엇부터 생각해야 하며 어디로 도망칠 수 있을까. 머릿속이 점점 복잡하다 못해 하얘지기 시작했다.
4.
인간적으로… ‘눈깔 발언’을 듣는 순간 나란 인간은 와장창 부서졌다는 것을 그는 아마 잘 알겠… 아니 모르겠지.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머릿속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스스로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있는데 머릿속 다른 한 편으로 와장창 소리가 났던 나는 어떤 일이 생각이 나며 스스로를 원망하는 소리가 또 터져 나왔다.
이러려고 상을 받은 건 아닌데.
1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축하 문자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신문에서 봤다면서 축하한다고. 마흔 넘어 어쩌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쓰게 된 글로 책을 내게 되었다. 아니 내가 어쩌다. 책을 만들던 내가? 살다 보니 이런 일이? 그런데 이걸로 상까지?? 내게도 이런 일이?
스스로도 의심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단상 위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저와 함께 오랜 시간 환장의… 아니 환상의 케미를 만들어간 김** 대표님과 동료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모두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날 찍은 사진 속 동료들이 웃었고 그 자리에 함께 한 가족들이 이를 다 드러내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 줄 알았다. 그곳에서 1부 행사도 미처 보고 나가지 않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엔 나는 너무 기쁜 상태였다. 그의 생각은 1년이 채 못되어 마치 도돌이 노래처럼 울려 듣게 된 셈이 됐다.
내 존재는 그에게 어쩌면 기생충 같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같이 지냈고 그랬기에 서로 기생했으며 누군가는 멸해야 끝나는 관계. 존재 자체가, 나의 수상이 자기혐오와 자격지심을 일깨우는 기생충 말이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상 받은 거 좋은 기분 뭐 한두 달 가디? 그게 니가 다 잘해서 받은 거 같아??”
5.
그는 내 입장에선 너무도 스테레오 타입이었다. 그 말인 즉, 그는 너무나 쉬울 수도 있는 상대였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쉬울 수도 있는 상대를, 상대에 맞게 대하지 않은 내가 문제였다. 나는 너무 올곧게 일했다. 너무 쉽게 재수 없음을 티 냈다. 티 냈다기 보단 감추지 못했다는 게 맞겠다는 게 내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어쨌든 그는 아주 스테레오하고 평범하게 재수 없었다. 내 눈깔만큼. 어쩌면 나의 경멸의 눈빛을 아주 정확히 읽은 지도 모르겠다.
그가 어떻게 재수가 없었느냐면, 그는 너무 멋진 엘리트가 되고 싶어 했다. 굳이 말하자면 드라마에 나오는 실장님 같은 롤을 원했을까. 잘생긴 실장님 같은 멋진 아우라는 쉽게 가질 수 없다는 걸 그도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만 빼면 어쩌면 실장님 같은 대우를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추구미 속에 허우적댔자.
클리셰라 욕해도 좋아. 드라마 속 실장님처럼 짠하고 멋지게 등장해서, 시기적절하게 한 번씩 멋진 말을 날려 주고 이에 감동하는 등 그 외 기타의 배경인물 같은 직원들. 그가 꿈꾸는 모습은 이러했던 것 같지만 그의 말 한마디엔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다. 말에 임팩트가 있으려면 허를 찌르는 판단력을 보인다거나, 수완이 좋아 사업을 키우거나(그래서 돈을 많이 주거나), 하다못해 착해야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는 끊임없이 있지도 않은 계획에만 있는 복지를 설파했고 직원들이 거기에 감동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말엔 모두 자동차 뒷자리에 있는 흔들 인형처럼 고개만 까딱까딱했을 뿐, 그 어느 누구의 눈깔에도 영혼은 없었다. 그 와중에 그의 시선이 잘 닿는 곳에 어쩌다 내가 앉아 영혼 없는 눈깔을 들킨 게 개인적인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그러게 눈깔을 쳐들고 있는 게 아니었는데.
6.
그의 눈깔 드립을 듣고 나선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갈 곳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간 나를 괴롭히면 편도 두 시간(출퇴근하면 네 시간)의 퇴근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미친 듯이 서치를 해댔다.
이런 썩은 눈의 나를 받아줄 곳이 혹시 지금 롸잇나우 구인을 하는지 미친 듯이 서치를 했다. 그러나 사과 5개 한 봉지가 시가인 요즘 같은 세상에선 구인이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더 어려운 그래서 우주선 타고 달나라 가는 닐 암스트롱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학력 무관! 경력 무관! 무엇보다 나이 무관!의 대기업 엔터사의 구인창이 눈에 띄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잠시 이탈한 채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력서를 써 내려갔다. 그것도 폰으로.
경력!
좋소…지만 10년 넘게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일한 성실함!
수상 내역! (비록 같은 좋소인들이 뽑았지만) 신문에도 실릴 정도의 1년에 단 한 명뿐인 올해의 **인!
다수(열 번?)의 강연 경험!
영어... 능력시험은 본 적이 없지만... 일본어는 덕후력으로 자격증까지 보유!(물론 17년 전에 딴 것이지만)
좋소에서 10년 넘게 갈고닦은 포샵, 디자인 능력과 디자이너로서는 흔치 않은 글쟁이 작가로서의 저작물!
이런 장점 많은 나! 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렇게 쓰고 보니 갑자기 자신감이 뿜뿜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멋진 나를 못 알아보고 썩은 눈깔로 나를 판단하다니... 오기가 올라왔다. 호기롭게 이력서를 쓰고 빠르게 구인글에 답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메일이 왔다.
메일 제목: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메일을 열지 않아도 그다음말은 무슨 말일지 알 것 같았다.
잠시 꿈을 꾸었다. 유명 방송사에서 한 번씩 이벤트성으로 했던 취업 서바이벌에 참가라도 한 것마냥, 나 또한 대기업의 일원이 되는 그래서 기적적으로 나도 ‘슈퍼 인턴’이 될지도 모른다는 꿈…
역시 나는 엠넷을 너무 많이 봤다. 현실판 쇼미더머니에선 내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어 주지 않았다.
7.
좋소인이면 좋소인답게 굴어! 아니야 나는 나름 고귀한 인품에 고매한 능력을 가진 고오급 인재라고! 내 안의 인격들이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그 인격들이 시끄럽게 머릿속에서 싸우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띵동! 하고 문자가 날아와 내 뺨을 거세게 때렸다. 정신이 번쩍! 보험금 정상 인출의 문자였다. 이후 다시 띵동! 띵동! 아… 과연 나는 다음 달에도 이 문자들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루빨리 살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저 좋소라도 좋으니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다시 그 지옥 같은 곳을 기어들어갈 수 있는 기회라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잠시의 멍도 때릴 수 없는 현실이 줄줄이 내 뺨과 정신을 순서대로 때리기 시작했다.
8.
억지로 끌어다 쓴 휴가를 모두 쓰고 이젠 내게 대표가 아닌 **사의 대표 김씨가 예고한, 그러니까 눈깔 발언 이후 일주일이 지난 최종 거취를 결정하기로 한 그날이 밝아왔다.
김씨가 어떻게 말할지 휴가 기간 내내 여러 시물레이션을 돌려가며 상상한 그날.
전날까지 나는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보았다. 만약 김씨가 이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면 어쩌지. 한편으론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라고 이미 진즉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던 바보 같은 나였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냥 책을 거기서 계속 만들고 싶기도 했기에. 하지만 이미 있었던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나에겐 몰라도 특히 그에게는. 존심 앞에 앞뒤 없고 자격지심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확신했다. 그에게는 사교성 없고 잘 웃지 않는, 그래서 따지고 보면 내 말을 안 듣는 것은 아닌데 묘하게 기분 찝찝하게 만드는 얘랑은 도저히 있을 수 없겠다고.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김씨 자신이 아닌 ‘불행한 나’를 위해, 그니까 내가 너를 위해 이런 마음 아픈 결정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외주 좀 해라. 라며… 왜냐하면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너무 불행’한‘ 사람이어서 강제적인 휴식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내가 너에게 ‘휴직’도 아닌 ‘퇴사’를 시혜하노라고…
9.
그저 책이 좋았던 것뿐이다. 그것도 어쩌다 좋아하게 된 일과 길. 이 길은 사실 어쩌다 열린 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그토록 오래 고용노동부의 자료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게 될 줄. 그것도 책을 디자인하는 일로. 어린 시절 스스로의 생계를 고민하다 선택한 길이었다. 그 어떤 재미도 기대도 희망도 없이 선택한 길, 이러다 다른 거 하겠지 하고 선택한 길이었다. 그렇게 인생의 문 중에 때마침 열린 문에 들어갔지만 어쩐지 점점 잘하고 싶어졌다. 잘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모르겠어서 나보다 남들이 더 잘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내가 맡은 책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뺐어버린 것 같아서 괴로움에 매일을 울었다. 그럼에도 놓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사랑하게 되어 버렸기에. 나에게 운명처럼 배정된 그 책들의 생명을, 가치를 제대로 발현시키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닥치듯 허겁지겁 그게 무엇이라도 글자라면 읽어댔다. 읽어대니 더 사랑하게 됐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10.
아, 맞다. 나는 원죄가 있었다. 이렇게 사람은 당해봐야 각성을 한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일을 시작한 나는 고용노동부 기준으로 총 18년을 일했다고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노동부에 조회해보지 않았으면 이 이후로도 알지 못했을 일이다. 스스로도 그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숨 쉬듯 때론 숨 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책을 만들어 왔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긴 시간 동안 참 많이도 사람이, 직원이, 인간의 정신과 품위를 위해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사회적으로는 어쩌면 품위 있어 보일지도 모를 직종, 출판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직장을 잃고 나가는 걸 그냥 지켜봤었다. 그럴 때마다 ‘내 일이 아니니까. 괜한 오지랖으로 내 인생까지 꼬이게 하지 말자’하며 어제 잘린 동료의 자리를 티도 안 나게 꼼꼼하고 깨끗하게 지워내고 기어코 내 자리로 만들었었다.
한동안 머릿속에서 깨끗이 잊고 지냈던 그들의 얼굴이 지금 이 순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에서 몇몇 사건은 내가 두 발을 디디고 있던 땅의 각도를 예리하지만 아주 조금씩 티도 나지 않게 조금씩 벌여 놓는다. 이를 눈치챘을 땐 그 각도라는 게 내가 전에 생각했던 정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기울어진 상태가 되고 이에 나는 무방비로 넘어져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걸 왜 난 넘어진 이후에 기억해 내는 갈까.
그렇게 굴러 떨어진 나는 몇 년 전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났던 것을 기억해 냈다. 망리단동의 흔한 길거리, 회사 동료들과 하하 호호 길을 가던 중이었다. 누군가 마주쳤고 내게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슬기 씨”
엇… 누구…
속으로 생각했다. 어쩐지 생각이 안 나는데 알 수 없는 기시감과 공포감이 몰려왔다. 누구…라고 말할 뻔하다가 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있었더니 그녀가 말했다.
“전에 우리 같이 잠시 일했었잖아요. 그때…. 도와줘서 고마웠었어요”
맞다. 지금도 이름이 기억이 안나는 그녀. 그녀는 나와 함께 정확히 5일, 일주일을 일했다. 월요일에 만나 인사하고 앞뒤로 앉아 일을 했다. 화요일에 입사 기념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수요일에 담당할 일을 나눠서 하기 시작했다. 전체 인원 10~20인 정도의 작디작은 이런 좋소에서, 흔치 않은 같은 디자인 일을 하는 동료가 생겨서 기쁘다고만 생각했었다. 사건은 목요일에 벌어졌다. 출근하고도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9시 몇 분 경, 언쟁의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의 최최최애 직원과 그녀가 말싸움이 난 것이다. “아, 그르니까!!! 내 꺼 먼저 해 줘!” 꽥하는 비명소리처럼 소리를 빽 지르고 최최최애 직원은 자리를 떴다. 그리고 4시간이 지난 오후, 그녀는 해고되었다. 사유는 ‘우리 회사랑 안 맞아’였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인가. 최애 직원은 어쩌다 저 ‘우리’에 합류할 수 있었는지. 4일 동료보다 그녀의 처세술이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도 저 ‘우리’에 합류하여 편안히 회사를 다니고 싶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난 그녀, 그녀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